성명늦었지만 트랜스젠더 A씨의 용기에 연대를 보내며

[성명]

늦었지만 트랜스젠더 A씨의 용기에 연대를 보내며

- 성별이분체계의 폭력과 혐오를 멈춰라


우리는 숙명여대에 합격통지를 받고도 입학을 포기해야했던 트랜스젠더 여성 A씨의 현실을 보며 참담함과 미안함을 느낀다. 이 사건은 한국사회의 주류 권력이 어떻게 개인의 몸과 삶을 규정하고 통제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며, 다수 권력이 혐오에 힘입어 개인을 난도질할 수 있음도 보여주었다. 특히 혐오에 동원되었던 ‘진짜 여성’이라는 구분과 배제가 주류권력의 위치에 선 차별과 억압의 담론에 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A씨는 절망에 멈추지 않았다. 차분하게 자신은 복잡한 억압과 차별의 사회구조 속에 있으며, 비장애인인 자신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주류의 위치에 있음을 성찰하며, 지금 자신은 멈추지만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글에 남겼다. 우리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참담함과 미안함을 안고 늦었지만 A씨의 용기와 절망 그리고 희망을 응원하고자 한다. 또한 A씨가 합격사실을 알린 후 논란이 되자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미온적으로 대응하며 A씨를 혐오의 도마 위에 올려놓은 숙명여대 대학당국을 규탄한다.


성별은 타인이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별은 염색체나, 호르몬, 성기형태 등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나 사회, 타인이 개인의 성별을 마음대로 규정하겠다는 것은 폭력이다. 다수가 정한 틀을 기준으로 개인의 성정체성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국가가 주민번호로 단 두 개의 성별로 사람을 구분하고, 수술한 트랜스젠더만을 여성/남성으로 인정하는(즉 배제하는) 폭력적 시스템은 바뀌어야하는 것이지 그것에 맞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여성인가는 다수 여성의 몸과 경험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성정체성은 개인의 몫이자 권리이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다수’가 차별과 억압을 받았으므로 그것이 ‘여성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어떻게 폭력과 혐오로 전환되는지 목도하며 답답함을 느낀다. A씨가 글에 썼듯이 우리는 복합적인 차별과 억압의 체계 속에 살아가므로 때로는 특권자의 위치에 서고 때로는 차별받는 위치에 서기도 한다. 모든 여성은 같지 않다. 성소수자여성, 이주민여성과 장애인여성, 비정규직 여성은 각각 다른 억압과 차별 속에서 살아간다. 동일성을 강조함으로써 발생하는 타자화와 혐오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면,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과 멀어질 뿐이다.


그리고 숙명여대 당국이 보여줬듯이 미시적으로 교차하는 차별의 위치에 선 사람들끼리 혐오하고 배제하도록 방치하며 팔짱을 끼고 관망하는 권력의 행태에 분노한다. 공적 조직이 최소한 보여줬어야 할 공정함조차 방기하며 A씨를 차별과 혐오에 휩싸이게 한 책임이 크다. 우리는 정부와 공공기관, 공적 조직의 이분법적 성별체계의 변화를 위해서도 싸울 것이다. 최근 전역당한 트랜스젠더여성 사례에서 보듯 국가권력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폭력적 규범과 관행을 바꾸는데 힘을 보탤 것이다.


A씨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입학의 포기일지 몰라도, 그녀가 여대에 지원하고 자신의 삶을 세상에 알린 것은 수많은 소수자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퍼뜨린 일이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A씨의 용기와 절망 그리고 희망에 같이 할 것이다. 구분과 배제가 아닌 연결과 연대를 통해 A씨가 꿈꿨던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할 것이다.


2020년 2월 8일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