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여성혐오로 여성노동자가 더 이상 일터에서 죽어서는 안 된다

[성명]

여성혐오로 여성노동자가 더 이상 일터에서 죽어서는 안 된다

서울교통공사와 국가는 살릴 수 있는 목숨을 방치했다


지난 9월 14일 서울교통공사에 일하던 여성노동자가 일하던 중 살해됐다. 비통한 마음으로 무참히 살해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입장을 밝힌다.


가해자는 살인을 저지르기 전부터 피해 여성노동자에게 불법촬영과 스토킹으로 지속적으로 범죄를 벌였지만 회사도, 재판부도, 경찰도 이를 방치했다. 살릴 수 있었던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회사와 경찰, 법원이 제 역할을 다하지 않아 고인은 죽었다.


서울교통공사는 가해자에게 직위해제만 하고 다른 조치는 하지 않아 그는 사내 전산망에 접속해 피해자의 근무형태와 피해자의 근무 형태와 동선을 파악하고 살인을 계획할 수 있었다. 스토킹 범죄의 특성과 고소에 대한 보복범죄를 고려한다면 직위해제만이 아닌 다른 조치가 필요했으나 하지 않았다. 회사는 여성노동자가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서울교통공사는 공식적인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경찰과, 검찰, 재판부 등 국가기관도 손을 놓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재판부는 작년 10월 불법촬영과 그를 이용한 협박을 했음에도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300번의 문자를 보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재범의 위험성과 피해자에 대한 보복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법원은 그가 제출한 반성문과 자격증 등으로 그의 범죄를 가벼이 다뤘다. 가해자는 살인범죄 전날 반성문을 제출하며 허술한 법제도를 악용했다. 경찰은 스토킹 처벌법에 직권으로 긴급응급조치, 잠정조치 등을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심지어 검찰이 징역9년을 구형했음에도 선고까지 한 달이 남은 기간 동안 경찰과 검찰은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국가는 여성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에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불법촬영과 스토킹은 타인을 자기결정권을 지닌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성차별적 인식과 여성혐오적 태도에서 비롯되는 젠더폭력으로,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와 문화가 이를 용인하고 확산시킨다. 그런데도 김현숙 여성가족부장관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여가부장관은 무엇을 위한 여성혐오와 여성살해를 부정하는가.


나아가 윤석열 정부의 반여성적 국정운영 방침에도 책임이 있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현 정부가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고 무고죄를 운운하는 동안, 직장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성인지감수성은 약화되었고 젠더 폭력 범죄에 관한 미비한 제도는 보완되지 않았다. 성차별과 젠더폭력을 용인하는 성차별적인 구조가 존속되는 한 성범죄는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에만 빠지지 않을 것이다.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를 보며 함께 행동했고, 그 힘으로 법제도를 조금씩 바꾸었던 것처럼 우리는 성차별적인 체제를 바꾸기 위해 싸워나갈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여성이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회와 국가를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서울교통공사의 공식 사과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을 촉구한다. 더 이상 일터에서 여성노동자가 살해되는 참사는 없어야 한다. 분노와 비통함으로 결의한다. 우리는 여성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싸울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라도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하고 젠더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라.


다시 한 번 고인의 안식을 빈다.


2022년 9월 16일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