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입장] 가자지구 홀로코스트 앞에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시대적 소명을 묻는다 – 이스라엘 영화 <예스!>의 상영 철회를 촉구하며


[입장] 가자지구 홀로코스트 앞에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시대적 소명을 묻는다

– 이스라엘 영화 <예스!>의 상영 철회를 촉구하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20세기 이후 인류가 가장 중대한 국제 범죄로 지정한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데 이어 미국과 합동해 이란과 레바논까지 침략한 지금, 27회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는 이스라엘 내부의 비판적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 전달하기를 택했습니다. 이스라엘 영화 <예스!>의 국내 첫 상영을 기획한 것입니다. 프랑스에 망명 중인 나다브 라피드 감독은 당연히 이스라엘 정부에 비판적이며, 이 영화는 가자지구 집단학살에 대한 동시대적 비판을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작년과 달리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팔레스타인 영화를 한 편도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그 의도와 무관하게 영화제 관객들은 집단학살이라는 “범죄 중의 범죄”를, 비교할 바 없는 이 부정의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시선에서 바라볼 상황에 처했습니다.

2년 반이 넘도록 우리는 인류 역사상 겪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한 민족이 절멸당하는 광경을 실시간 목격하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 식민 당국은 점령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하고 230만 주민을 “인간 동물”이라 부르며 집단학살을 시작했습니다. 살해된 가족 6명의 주검 옆에서 3시간 동안 구조대를 기다리던 6살 힌드는 마침내 도착한 구급대원들과 함께 살해당했습니다. 의약품과 음식 차단으로 매일 야위어 가던 뇌성마비 아동 10살 야잔은 결국 굶어죽은 16번째 아동으로 기록됐습니다. 괴사병에 걸린 2살 하비바는 이스라엘의 출국 금지로 해외 치료가 지연된 끝에 검어진 팔다리를 잘라 내야 했습니다. 가족의 절박한 호소가 언론을 타며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진 이 아동들은 도저히 이름을 기억할 방법이 없는 아동 희생자 2만 명, 그리고 유엔이 “현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절단 아동 집단”으로 집계한 후 2년간 줄곧 그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생존 아동 수천 명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은 구호품 배급소 600여 곳을 단 4개로 줄이고는 굶주리는 가족을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맨몸의 피란민들을 무차별 사격해 5개월간 3천 명을 살해했고, 이를 몰래 촬영한 미국인 베테랑 용병들은 <오징어 게임>에 비유하며 이런 전쟁범죄는 본 적이 없다고 고발합니다. 외국인 의사들은 어떤 전쟁에서도 이토록 머리와 가슴을 표적해 아동을 살해하는 일은 없었다며 고의적인 학살 패턴에 대해 쉼 없이 증언합니다. 어느 전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런 전쟁범죄들이 가자에서 일반적인 이유는 이것이 “민간인 보호”라는 가식조차 집어던진 의도적인 집단학살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자신들이 살해했거나 강제 추방한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속옷과 드레스를 입고 기념사진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고, 전시해 놓은 속옷들을 배경으로 마치 큐레이터라도 된 양 찍은 사진을 데이팅앱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민가에서 훔친 보석을 선물로 가져가겠다는 영상 편지를 보내고, 폐허로 만든 리조트에서 청혼하는 감격적인 장면을 올려 널리 축하받습니다. 스스로 전쟁범죄를 낱낱이 기록해 공유한 덕에 집단학살 4개월 차에 세계 최고 법원인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례적으로 잠정 조치 명령까지 내렸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무기 업체는 비무장한 주민을 추적해 폭격하는 실제 이스라엘 점령군의 전쟁범죄 영상을 무기 홍보 자료로 사용하고, 이스라엘 민간인들은 드물게만 반입되는 구호 트럭마저 저지하겠다며 갓난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들이밀어 트럭을 멈춰 세웁니다. 부모가 아우슈비츠 생존자였던 한 영화학자는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집단학살이 “나치 홀로코스트보다 훨씬 끔찍하다”고, 연루된 자가 훨씬 많다고, 우리가 본 중 “가장 민주적인 집단학살”이라고 분노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유대인 시민권자의 82%가 “가자지구에는 무고한 사람이 없다”는 집단학살적인 믿음을 공유합니다.

집단학살과 침략전쟁이라는 가장 중대한 두 가지 범죄를 동시에 자행 중인 이스라엘을 제재해야 한다는 데는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가해국만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는 이 중대 범죄들을 멈추도록 강제해야 할 국제법상 의무가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입니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 전체 시민사회는 이미 2005년에 우리에게 답을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의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인정하고 국제법을 준수할 때까지 BDS, 즉 보이콧·투자 철회·제재라는 비폭력 운동을 전개해 달라고 세계 시민사회에 요청한 것입니다. 유럽에서 팔레스타인 땅을 침략해 들어온 시온주의 민병대가 원주민 집단학살과 인종청소를 통해 78%의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 위에 이스라엘을 건국한 지 올해로 78년 차입니다. 가자 집단학살보다 훨씬 이전에 이런 요청이 나온 까닭입니다.

이스라엘이 2023년 10월 이후의 현 국면이 다신 없을 절호의 기회라며 국시를 더욱 밀어붙여 팔레스타인을 넘어 이웃한 레바논과 시리아 영토까지 불법 획득하려 하고 있는 지금, BDS 운동은 부정의에 함께 맞서자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부름에 우리가 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적실한 운동입니다. BDS민족위원회 산하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학술·문화 보이콧 캠페인(PACBI)’은 우리에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술가 개인에 대한 보이콧이 아니며, 내용을 근거로 한 검열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국가 선전 도구로 활용되는 작품의 제작과 유통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선택한 영화 <예스!>는 이스라엘 영화 제작사 부스탄 필름이 공동제작하고, 정부 펀드인 ‘이스라엘 영화 기금’의 자금 지원을 받았으며, 파리에서 열린 이스라엘 영화제에 출품돼 이스라엘 국가 선전에 이용되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오피르상 7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이스라엘 국가 대표로 자동 출품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결과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이는 가이드라인에 대한 명백한 위반입니다. 때문에 작년 프랑스 ‘인류의 축제(Fête de l’Humanité)’가 산하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팔레스타인 영화제에서 <예스!>의 상영을 결정했을 때, 팔레스타인 영화인들은 이에 항의하며 출품을 철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영화는 상영 기회를 잃고 이스라엘 영화가 상영되며 결국 팔레스타인의 목소리와 존재가 지워지는 기이한 광경이 연출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국가 기관의 소유물이 아니며, 여전히 내용을 보고 비판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예스!>의 감독 역시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영화를 보고 비판하라며 BDS 운동에 대한 반대 의사를 지속적으로 표명해 왔습니다. 그는 보이콧이 “정치적으로 게으르고“, 해외 연대자들이 “매우 안전한 장소에서“ 이스라엘 작품을 쉽게 보이콧하며, ”상징“에 매달릴 뿐 현실의 ”복잡성을 다룰 줄 모른다”고 비난합니다. 또한 현 상황에 대해 “아마도 가장 급진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인”이며, “그들이 영화를 봤다면 영화가 내용과 형식 면에서 얼마나 파격적인지 깨달았을 것”이라면서 자신의 정치적·예술적 성취를 자랑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BDS 운동은 팔레스타인 시민사회가 제시하고 지도하는 운동입니다. <예스!>의 감독이 비방하듯 안락한 위치에 있는 연대자들이 이끄는 운동이 아닙니다. 78년간 팔레스타인 땅을 식민 통치해 온 식민 국가의 국민(자국에 비판적이라서 망명 생활 중이지만 여전히 국적을 유지한 채 특권을 포기하지 않은)이, 식민 지배받는 이들의 해방 운동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면서, 이들의 해방을 포함한 현 정세에 대한 “가장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자신과 같은 식민자라고 모두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를 영화 문법에 맞춘 스크린으로 다시 재현했으니 작품을 보고 비판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보도자료 등을 통한 대대적인 홍보에 따르면 감독은 이스라엘 점령군의 실제 가자지구 폭격을 <예스!>에 담았고, “가자지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키스 신을 찍을 때면 촬영이 끝날 무렵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게 될지 궁금해지곤 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 예술가의 성찰을 위한 재료가 아닙니다. 집단학살 현장은 현실감 있는 세트장 따위가 아닙니다. 영화가 촬영되던 시기 매일 가자지구에서 300-400명이 살해됐습니다. 가장 많은 날은 700명, 단번에 가장 많이 살해당한 것은 471명이 학살당한 알-아흘리 병원에서였습니다.

실제 집단학살을 활용해 <예스!>의 감독이 (자신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룩하는 동안 팔레스타인의 영화인들은 완성된 자신의 영화를 보지도 못한 채 학살당했습니다. 26세 사진가 파티마 하수나는 자신의 삶을 기록한 이란 감독의 다큐 <네 손에 영혼을 얹고 걸어라>의 칸국제영화제 초연 소식을 들은 지 24시간 뒤에 가족 10명과 함께 살해됐습니다. 24세 기자 모하메드 살라마는 구호품 배급소 학살을 다룬 다큐 <피에 흠뻑 젖어: 아민 사미르 칼리파의 살해>를 약혼자와 만들던 중 살해당했습니다. 모든 직업군이 그렇듯 이스라엘 점령군이 살해한 영화인의 명단도 끝이 없습니다.

포화 속에서 가자지구의 수많은 언론인과 영화인이 목숨을 걸고 현장의 진실을 세계로 타전하며 각종 국제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 한국의 대형 극장에도 살려달라고 호소하던 6살 힌드의 실제 목소리가 담긴 팔레스타인 영화 <힌드의 목소리>가 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이스라엘 영화는 있는 반면 팔레스타인 영화는 한 편도 없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우리 시대 홀로코스트가 2년 반 넘게 우리 눈앞에서 실시간 생중계되는 지금, 전주국제영화제가 생각하는 영화와 예술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홀로코스트는, 집단학살은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하고 부당한 폭력이 아닙니다. 전쟁조차 아니며, 국가라는 것 자체의 성질이 본래 폭력적이라는 문제와도 차원이 다릅니다. 이스라엘에도 자국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이 당연히 있습니다. 인구의 80%를 점하는 유대인 시민권자 사이에선 민주주의가 부분적으로 작동하며, 이들만 보면 이스라엘도 내부에서 투쟁해서 바뀌어야 하고 또 바뀔 수 있는 여타 국가와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65개 법제를 통해 인구 20%에 달하는 이스라엘 시민권 보유 팔레스타인인들을 공식적으로 2등 시민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의상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전의 백인 우월주의 국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민주 국가라고 규정하지 않듯이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내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유대인 시민권자들은 이 체제가 부여한 특권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1967년 나머지 22%의 팔레스타인 땅도 군사점령했고, 국제사법재판소와 유엔 총회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10월에는 점령지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인들도 당연히 집단학살과 군사점령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전 사회적으로 수많은 논의를 이어 가는 중입니다. 군인들은 국회에 출석해 살아 있는 가자 주민을 탱크와 불도저로 깔아뭉갠 후 더는 고기를 먹을 수 없다고 울부짖으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합니다. 납치한 가자 주민을 집단강간하는 CCTV 영상이 유출된 군인들은 이스라엘 사회가 고마워하기는커녕 자신들을 기소했다며 억울함을호소하고 여론에 힘입어 무죄 방면됩니다. 최근 통과된 팔레스타인 독립운동가 사형법은 반복적인 인명 살해에 뒤따르는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 간수 중 누구의 버튼이 실제로 사형을 집행했는지 알 수 없도록 세심하게 설계되었습니다.

<예스!>의 감독은 이스라엘은 “중국도, 이란도 아니”라고, 적어도 그보다는 훨씬 민주적인 국가라고 방어합니다.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이스라엘 영화를 봐야 한다는 주장은, 이스라엘 국가가 추구하는 영화 예술을 통한 프로파간다가 미학적 고려를 우선시하고, 이스라엘 비판 테제를 수용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서구 사회에 어필할 수 있는 민주 국가로 재포장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물입니다. 이스라엘이 국가 펀드를 투자해 국제 사회에 선보이는 수출용 작품 중에서 이스라엘을 단순히 찬양하는 영화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현재 이스라엘뿐 아니라 서구 사회에서도 집단학살의 책임을 국제지명수배범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그 내각에 전가해 시온주의 정착민 식민 국가 이스라엘을 구제하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이스라엘 영화란, 비행을 저지르는 것은 소수일 뿐이며 그 소수를 제외한 이스라엘은 “정상 국가”라는 이러한 담론의 연장선에 위치합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인의 시선을 통해 집단학살을 이해하고 이스라엘인에 자연히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영화 안팎의 내러티브는 그간 이스라엘 체제가 집단학살을 정당화해 온 방식, 즉 가자 주민보다 이스라엘인을 우리와 같은 인간적인 존재로 느끼게 만드는 방식과도 공명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스라엘 사회는 내부로부터 변화가 가능하며, 우리가 그 비판적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고 한국 사회에 전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십니까. 이스라엘로 납치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식민 감옥에서 강간·고문·살해당하고 있으니 당장 멈추어야 한다고 유엔 전문가 및 인권 단체 들이 끊임없이 보고서를 내고, 국경이 열려 해외에서 치료받을 수 있길 기다리는 위급 환자 2만 2천여 명이 매일 10명씩 사망해 대기자 명단에서 삭제되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성찰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믿으십니까. 이스라엘이라는 체제를 향한 바로 그런 선의와 믿음이 78년 동안 팔레스타인의 정의와 해방을 가로막아 왔습니다. 집단학살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는 이스라엘이 내부로부터 변화할 때까지 앞으로 또 다른 78년을 더 기다려 보라고 선고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동안 수많은 홀로코스트 영화를 만들고 관람해 온 인류가 얻은 교훈이, ‘오직 유대인에게만 같은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일 리는 없을 것입니다. NEVER AGAIN, 그 누구에게도 “결코,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홀로코스트 추모 구호는 선언에 그칠 수 없습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인류 공통의 기억과 추모는 현재의 집단학살을 막아 낼 BDS라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나쁘다는 데는 물론 동의하지만, 어째서 이스라엘에만 그러는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더 크고 악한 세력을 두고 왜 이스라엘만 제재하는가? 이스라엘도 국가 차원에서 같은 질문을 되풀이합니다.

우리는 부정의에 맞선 싸움에 함께할 때, 투쟁하는 주체들의 요청을 자연히 우선시합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투쟁하는 주체들은 분명하게, 문화예술 보이콧을 비롯해 이스라엘에 대한 투자철회와 군사·경제·외교적 제재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PACBI의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이스라엘 영화를 상영하고 본다는 것은, 단순한 부작위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요청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됩니다. <예스!> 감독은 문화예술 보이콧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며 우리에게 식민 권력의 서사를 보고 비판하라는 다른 길을 제시했습니다. 분명 우리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장소”에 있고, 때문에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식민자들과 식민 점령받는 자들의 요청 중 무엇에 응답할 것인가. 이것은 결코 어렵거나 복잡한 문제가 아닙니다.


2026.4.24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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