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2호] 활동가의 편지

소식지 2호 - 2020년 1월


2020년, 무지개빛 연대의 바람을 바라며


이혜정(바람 상임활동가)

12월 7일 우리는 광화문에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의 편지글을 들었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이와 영영 이별하고 생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슬픔을 토로하였을 때 광장에 선 우리는 함께 울었습니다. 하루 여섯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나라에서 소중한 이들의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슬픔이 켜켜이 쌓이고 있는 이곳에서 그녀는 이러한 비극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고자 광장에 섰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음의 외주화가 허용되는 사회에서 죽음은 우연한 사고가 아닙니다. 노동자들은 죽음의 위협이 곳곳에 도사리는 노동현장에서 희박한 운에 기대 생존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통계는 비슷하게 유지되고 그 통계 속에 들어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늘도 동료들이 죽어간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서울반도체에서 혈액암으로 죽은 여성노동자가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업장에서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이유 모를 통증과 건강악화로 퇴사하였습니다. 그 자리는 새로운 여성노동자들과 대학생 현장실습생으로 채워졌습니다. 회사는 책임 소재에 대한 간격을 한 단계 더 벌리기 위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죽음과 위험공정 사이의 인과관계는 산재인정을 통해 확인되었지만, 회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부모 가정에서 가난하게 자란 그녀는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반도체 공장에 들어갔고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지도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최근 서울반도체에서는 방사선 피폭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대학생 현장실습생이었습니다. 한 여성노동자의 사망 이후에도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던 회사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냈습니다.


바람에서는 2019년부터 여러 활동가들과 함께 산재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터져 나온 세상을 향한 목소리들을 기록하는 사업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투쟁해 온 이들의 시간을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은 힘이 셉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바람'의 자원활동가들은 2019년 한 해의 활동들을 마무리하며,ㅠ한 해 동안 서로의 활동들을 격려하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바람은 잊혀지거나 소외되는 이들의 시간을 기록하겠습니다. 더 이상 노동자들이 위험한 현장에서 죽어가지 않도록 같이 싸우겠습니다. 각자가 가진 고유의 색과 권리를 존중하며 투쟁하는 이들의 무지개빛 역사를 함께 만들어나가겠습니다. 2020년 더 열심히 뛰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이 되겠습니다.


2019년 함께 해주신 ‘바람’ 회원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회원님들, 2020년에도 함께 연대의 바람, 인권운동의 바람 함께 일으켜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