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소식지12호]
활동가의 편지
저항을 키울 화력과 그릇을 준비할 때
윤석열 정부를 맞이하는 자세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냄비 끓듯 하다’
대선 전 페이스북 등 온라인공간에 대통령 후보들의 언행이나 선거정책을 둘러싼 여러 감정들이 넘쳐나는 걸 보면서 든 생각이다. 후보자의 정책만이 아니라 가족 문제까지 나왔다. 선거가 끝나고는 탄식과 우려의 감정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감정의 진폭은 조금 달랐다. 이전의 감정이 냄비 끓듯 하는 폭발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가라앉은 감정 같다. 때로는 결의와 다짐의 말들로 나타나기도 했다.
페이스북 등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의 속내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그 들끓던 냄비의 마음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닌 선거 시기의 냄비는 무엇이었을까.
민심과 국가를 움직이는 정책과 정치의 내용이 음식물, 조리물이라면 냄비는 선거제도일까. 어떤 냄비는 열전도율이 높아서 물이 금방 끊는다. 양은냄비가 그렇다. 어떤 냄비는 끊는 점은 오래 걸리지만 음식물의 온도를 오랜 동안 보존한다. 돌솥냄비나 3중 스테인리스 냄비가 그렇다. 선거제도는 민심이나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염원하는 우리의 마음을 담기에는 역부족인 그릇이다. 3m 두께의 돌로 만든 돌솥같달까. 끓게 하기도 어렵고 돌솥안의 내용물도 드러나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의 선거제도는 양당중심의 정당제도를 극대화한다. 불구멍이 두 개인 가스레인지 같다. 토론회조차 4개 정당만 부르기에 진보정당의 후보들의 정책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언론들이 유력후보들의 행적만 보도하니 세상에 선택지가 두 개인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언론의 역할도 크다. 거대양당 후보 중심의 선거보도는 오래된 보수양당체제를 공고하게 한다. 그래서 선거제도와 양당중심의 정당제도를 바꾸는 것은 오랜 정치개혁의 과제이다.
더큰 문제는 선거기간에 의제화된 정치과제, 한국사회의 불평등 등의 의제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바뀌어야 할 문제들이 선거가 끝나면 사라진다.
선거시기에만 정부나 체제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들끓는 모습을 보며 냄비만이 문제가 아니라 화력도 문제겠구나 싶다. 어떤 사회적 정세적 조건을 만드냐에 따라 냄비가 들끓을 수도 있고, 차갑게 식은 채 뚜껑이 닫히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만약 언론만이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면 언론 입맛대로 냄비는 끓거나 식을 것이다. 어떤 그릇에 우리의 열망과 분노를 담아낼 수 있을까. 적절한 그릇은 무엇일까.
새로운 싸움을 할 화력과 그릇의 준비
혐오를 득표수단으로 삼았던 국민의 힘 윤석열씨가 이제 차기 정부를 이끌 것이다. 검찰 출신의 그의 전력이나 검찰 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선거시기의 오만한 태도를 생각한다면 차기 정부가 국민들을 어떻게 대할지 짐작되어 심히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그가 내세운 정책은 인권후퇴적인 정책이라 인권활동가들은 바빠질 것이다. 노조혐오에 가깝게 민주노총을 공격했던 태도를 떠올린다면 노조탄압도 심해질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고 여성혐오로 이십대남성층의 표를 동원하려 했던 정책방향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사람들이 암울해 할만하다.
한동안 정말 이런 사람이, 이런 정책을 떠들어대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냐고 설마 했던 생각에 대선 결과에 절망스런 감정이 솟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절망과 우울의 감정만이 지속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 그 감정을 분노와 저항의 에너지로 끓어오르기를 바란다. 그래야 반동의 정치에 얼어붙어 인권이 후퇴되도록 놓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때로는 투쟁의 전술이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의제 자체가 불쏘시개가 되기도 하고, 주체의 절박함이나 진심이 불쏘시개가 되기도 한다. 2019년 청년노동자 김용균 씨의 죽음 자체가 불쏘시개가 되었고, 2020년 산재유가족들의 단식이 불쏘시개가 되었다.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에 성적 지향을 삭제하라는 반동성애혐오세력에 흔들리는 서울시장에 대한 항의를 서울시청로비 점거농성으로 극대화시켰던 것처럼 전술 자체가 분노를 담는 그룻이 되기도 한다.
2022년 3월초, 혐오정치세력이 대통령이 된 후 나는 고민에 빠진다. 어떤 그릇에 투쟁과 의제를 담아야 화력이 가장 세질까. 어떻게 해야 반동과 혐오의 정치를 막아낼 수 있을까. 15년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미뤄진 현재 시점에 보수 양당에 대한 분노를 담아낼 그릇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볼 때다.


[바람 소식지12호]
활동가의 편지
저항을 키울 화력과 그릇을 준비할 때
윤석열 정부를 맞이하는 자세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냄비 끓듯 하다’
대선 전 페이스북 등 온라인공간에 대통령 후보들의 언행이나 선거정책을 둘러싼 여러 감정들이 넘쳐나는 걸 보면서 든 생각이다. 후보자의 정책만이 아니라 가족 문제까지 나왔다. 선거가 끝나고는 탄식과 우려의 감정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감정의 진폭은 조금 달랐다. 이전의 감정이 냄비 끓듯 하는 폭발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가라앉은 감정 같다. 때로는 결의와 다짐의 말들로 나타나기도 했다.
페이스북 등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의 속내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그 들끓던 냄비의 마음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닌 선거 시기의 냄비는 무엇이었을까.
민심과 국가를 움직이는 정책과 정치의 내용이 음식물, 조리물이라면 냄비는 선거제도일까. 어떤 냄비는 열전도율이 높아서 물이 금방 끊는다. 양은냄비가 그렇다. 어떤 냄비는 끊는 점은 오래 걸리지만 음식물의 온도를 오랜 동안 보존한다. 돌솥냄비나 3중 스테인리스 냄비가 그렇다. 선거제도는 민심이나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염원하는 우리의 마음을 담기에는 역부족인 그릇이다. 3m 두께의 돌로 만든 돌솥같달까. 끓게 하기도 어렵고 돌솥안의 내용물도 드러나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의 선거제도는 양당중심의 정당제도를 극대화한다. 불구멍이 두 개인 가스레인지 같다. 토론회조차 4개 정당만 부르기에 진보정당의 후보들의 정책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언론들이 유력후보들의 행적만 보도하니 세상에 선택지가 두 개인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언론의 역할도 크다. 거대양당 후보 중심의 선거보도는 오래된 보수양당체제를 공고하게 한다. 그래서 선거제도와 양당중심의 정당제도를 바꾸는 것은 오랜 정치개혁의 과제이다.
더큰 문제는 선거기간에 의제화된 정치과제, 한국사회의 불평등 등의 의제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바뀌어야 할 문제들이 선거가 끝나면 사라진다.
선거시기에만 정부나 체제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들끓는 모습을 보며 냄비만이 문제가 아니라 화력도 문제겠구나 싶다. 어떤 사회적 정세적 조건을 만드냐에 따라 냄비가 들끓을 수도 있고, 차갑게 식은 채 뚜껑이 닫히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만약 언론만이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면 언론 입맛대로 냄비는 끓거나 식을 것이다. 어떤 그릇에 우리의 열망과 분노를 담아낼 수 있을까. 적절한 그릇은 무엇일까.
새로운 싸움을 할 화력과 그릇의 준비
혐오를 득표수단으로 삼았던 국민의 힘 윤석열씨가 이제 차기 정부를 이끌 것이다. 검찰 출신의 그의 전력이나 검찰 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선거시기의 오만한 태도를 생각한다면 차기 정부가 국민들을 어떻게 대할지 짐작되어 심히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그가 내세운 정책은 인권후퇴적인 정책이라 인권활동가들은 바빠질 것이다. 노조혐오에 가깝게 민주노총을 공격했던 태도를 떠올린다면 노조탄압도 심해질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고 여성혐오로 이십대남성층의 표를 동원하려 했던 정책방향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사람들이 암울해 할만하다.
한동안 정말 이런 사람이, 이런 정책을 떠들어대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냐고 설마 했던 생각에 대선 결과에 절망스런 감정이 솟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절망과 우울의 감정만이 지속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 그 감정을 분노와 저항의 에너지로 끓어오르기를 바란다. 그래야 반동의 정치에 얼어붙어 인권이 후퇴되도록 놓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때로는 투쟁의 전술이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의제 자체가 불쏘시개가 되기도 하고, 주체의 절박함이나 진심이 불쏘시개가 되기도 한다. 2019년 청년노동자 김용균 씨의 죽음 자체가 불쏘시개가 되었고, 2020년 산재유가족들의 단식이 불쏘시개가 되었다.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에 성적 지향을 삭제하라는 반동성애혐오세력에 흔들리는 서울시장에 대한 항의를 서울시청로비 점거농성으로 극대화시켰던 것처럼 전술 자체가 분노를 담는 그룻이 되기도 한다.
2022년 3월초, 혐오정치세력이 대통령이 된 후 나는 고민에 빠진다. 어떤 그릇에 투쟁과 의제를 담아야 화력이 가장 세질까. 어떻게 해야 반동과 혐오의 정치를 막아낼 수 있을까. 15년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미뤄진 현재 시점에 보수 양당에 대한 분노를 담아낼 그릇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