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15호] 활동가의 편지

[소식지 15호 2022.10월]

활동가의 편지


이태원 참사 이후 : 안녕하세요


안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저는 인사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반가워하고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안녕, 무탈함을 묻는 인사가 이렇게 마음을 먹먹하게 할 줄 몰랐습니다.


10월 30일 오전 7시, 제가 이태원 참사를 접한 시간입니다. 전날 일찍 잠든 사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황망하다’고 말할 뿐 벙 찐 상태를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며칠은 모든 행동에 버퍼링이 걸리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의 국가애도기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정부는 빠르게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습니다. 단 일주일, “추궁의 시간이 아니라 추모의 시간”을 갖자고 했습니다. 국가는 추모와 애도가 무엇인지 고민 없이 어떻게 애도해야 할지 지침을 내렸습니다. 행정안전부, 지자체 등 정부는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해 “자발적 영업 중단 및 특별행사 자제를 권고”하였습니다. 합동분향소를 설치하면서는 참사가 아닌 사고로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라고 쓰도록 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대통령, 행안부 장관, 서울시장 모두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사과의 문장들을 뱉었지만 진정한 사과는 아니었습니다. 경찰배치의 권한이 없었다, 집회를 핑계로 경찰이 배치될 수 없었다, 권력과 책임이 있으면서 왜 경찰이 안 움직였는지 모르겠다는 뻔뻔한 태도로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국가의 애도 방법은 오로지 침묵이었습니다. 식당들은 영업을 할 수 없고, 예술인들의 공연과 행사는 줄줄이 취소되었고, 참사에 대한 국가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묵살되려 했습니다. 우리에게 강요된 애도의 방법. 국가가 애도를 통제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애도합니다. 그리고 진상규명이 진심어린 애도이고 책임자 처벌이 진정한 애도가 아닐까요.


인권운동 바람이 함께하고 있는 광화문 광장 공동행동에서 11월 13일에 광화문 광장에서 <애도와 민주주의의 길 걷기> 다크투어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투어를 통해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투쟁과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 문중원 열사 투쟁을 기억하며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께 추모했습니다. 자신을 일반 시민이라고 소개하신 분들도 참여해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광장을 걷는 것으로 집회로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애도했습니다.


희생자 중 누구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중 다수가 청년이라는 점에서 “꽃다운 청춘”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편 가려진 사람들이 또 있었습니다. 재한외국인들, 이주민들. 이태원이란 공간이 가진 여러 상징 중 하나는 이주민 교류의 장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참사에서 정부의 대처는 내국인 중심으로만 말해졌습니다. 정부 브리핑에서 외국인 희생자에 대한 지원이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지원을 요청하면 모든 관계기관들이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발뺌했습니다.


인권운동 바람은 이란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시민모임(약칭 이란지지모임)에 함께하며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여성억압적인 이란 정부에 저항하고 있는 이란 시민들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사망한 이란 시민 다섯 분의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란지지모임은 이태원 참사 현장 추모공간에 애도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이란인 다섯 분을 포함한 모든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모든 희생자들에 대한 존엄한 애도와 철저한 진상규명, 평등한 지원과 재발방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함께 애쓰겠습니다.

We send our deepest condolences to all those who lost loved ones, including 5 Iranian people, in the tragedy in Itaewon.

We are calling for equal dignity and support for every victims, thorough fact-finding on the disaster,

and efforts to prevent this tragedy from happening again. May the victims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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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라고 물으며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서로의 마음을 돌보기에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와 정쟁으로 이용하는 정치권의 행태에 가려진 참사의 진실과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부재에 분노합니다. 조금의 시간을 보낸 지금 이 울분을 어떻게 풀어갈지 함께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권운동 바람도 계속 고민하고 안전한 사회 안녕한 사회를 향해 행동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태원 참사 희생자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우리 모두에게 위로의 마음을 보냅니다.


*<애도와 민주주의의 길 걷기> 다크투어 프로그램은 23일 오후 7시 30분에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