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3호 - 2020년 4월
[살랑살랑 ‘후원인의 바람’] - 박래군 님
북새풍을 쓸어가는 그런 바람이 되기를
- 박래군 님 인터뷰 (정리: 명숙)
인권운동네크워크 바람(약칭 인권운동 바람)의 후원인인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님을 만났습니다. 박 소장님은 인권운동 바람의 1호 후원인이기도 합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인권의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만났습니다.
인권중심 사람에서 일한지는 얼마나 되나요?
2004년에 인권재단 사람을 만들었고, 재단이 2013년에 인권센터인 인권중심 사람을 만들었어요. 인권센터를 만들기 전까지는 인권단체 일을 하면서 재단 일을 겸업을 했어요. 용산참사 투쟁으로 감옥에 갔다 오고 나서 인권재단을 키우려고 전업을 한 거지요. 벌써 10년이 됐네요.
인권재단을 만든 이유는 인권단체들이 대부분 재정이나 인원이 열악하기 때문이었어요. 다른 시민단체들과 비교해도 인권단체들은 후원규모도 적고 활동가들의 숫자도 적어요. 사실 인권단체들은 재벌이나 정부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다보니 기업에서도 후원을 잘하지 않아요. 유니세프 같은 국제구호단체들에 후원을 하더라도 국내인권단체들에는 후원을 안 해요.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정치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인권운동이 정치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시절, 기업이나 정부 부처가 이러한 단체를 후원했다가 불이익을 받은 경험이 있다 보니 더 꺼려하지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열악한 인권단체들을 지원하는 일이 인권재단의 일이죠.
박 소장님이 인권운동을 한지가 꽤 됐는데요, 인권운동의 변화가 체감되는 게 있다면 어떤 면이 있나요? 제가 보기에는 10년 전과 다르게 작지만 충남이나 포항에도 인권단체들이 생겨난 게 보이는데요.
새로운 인권단체들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인권운동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여전히 대부분의 인권단체들은 규모가 작지요. 재정도 그렇고요.
그런 상태에서 인권의 제도화, 즉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권조례를 만들고 지역 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국가인권위원회 지역사무소도 만들어졌으나 그게 인권운동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은 거죠. 그렇다보니 인권운동이 인권의 제도화에 빨려 들어가기 쉽기도 하고요. 긴장과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지요. 그 외에도 인권교육을 하는 공공기관이 늘어났으나 그런 인권교육을 인권단체들이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인권교육의 시장화도 하나의 원인이긴 하지만 그보다도 관에서는 인권단체들이 하는 걸 원하지는 않아요. 인성교육과 차별이 없는 ‘말랑말랑한 인권교육’을 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인권활동가들이 인권의 역사를 교육하면 저항권을 얘기하지만 관에서 수료증을 발급하면서 의뢰하는 단체나 교육가는 그런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죠.
장애인권단체, 성소수자인권단체, 청소년단체들은 10년 전에 비하면 굉장히 많이 생긴 것 같은데, 말씀하시는 건 흔히 말하는 일반인권단체인가요?
맞아요. 소수자인권을 하는 단체는 많아졌어요, 소수자운동의 성장과 투쟁의 결과이지요. 그에 반해 인권 일반을 하는 단체들은 전체적으로는 늘지 않았어요.
거칠게 분류하면 ‘인권운동 바람’ 은 말씀 하신 일반 인권단체인데, 그러면 바람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했는지는 아시나요? 하하.
잘은 몰라요. 소식지를 못 봐서 그런가. 하하. 페미니즘으로 쓴 인권선언을 했다고 들었고, 그 외에는 노동자들 투쟁에 연대하는 걸 주로 들었던 거 같아요. 다른 단체와의 차별성은 연대사업보다는 독자사업으로 드러나는데, 그게 적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래도 현장에서 연대요청을 하면 거절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리고 이건 다른 차원의 고민이긴 한데, 왜 노동 분야의 요구가 10년 전과 다르지 않을까, 고민이 돼요. 여전히 비정규직 철폐, 손해배상 철폐 등이 주요 요구로 나오는데 이러한 현실을 바꾸는 게 현안 대응 대책위로만 안 되잖아요. 이 부분에 대해 민주노총을 비롯해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면 ‘인권운동 바람’ 후원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요?
명숙 활동가 때문이지요. 명숙 활동가와는 이전에 같은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했고, 국가인권위원회 혁신위원으로 같이 일하기도 해서 후원했어요.
‘인권운동 바람’ 은 페미니즘에 기반한 인권운동을 표방하고 있는데요, 2018년에는 젠더갑질실태조사와 페미니즘 선언, 장애인노동권, 여성노동자인권을 주로 했어요.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어떤지요?
제가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이니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많지요. 페미니즘은 역동적이기도 하고 페미니즘의 가치가 모든 차별에 대한 반대이니 인권운동과 밀접하지요, 역사적으로도 소수자인권의 증진에도 페미니즘이 큰 역할을 했고요. 그래서 관심은 많아요. 물론 최근 페미니즘의 다른 갈래들의 행보를 보면 우려가 될 때도 있어요. 숙대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과 관련한 논쟁, 여성의 당에서 재벌에게 후원을 요청하는 등 인권운동과 페미니즘의 지향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주는 사건이 많았잖아요.
노동자투쟁에 연대하더라도 ‘인권운동 바람’ 이 하면 연대단위에 성인지 감수성이나 소수자감수성을 불어넣는 역할을 주로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바람이 좀 더 주력했으면 하는 게 있다면?
연대활동을 통해 운동의 감수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직 운동사회는 가부장적이기는 하니까요. 그렇다면 더더욱 바람의 독자사업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요? 바람이 어떤 곳인지를 알릴 수 있는 활동을 선명하게 하면 좋겠어요. 독자사업 이후에도 홍보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바람이 사람들에게 인식되니까 홍보활동도 중요하고요. 일반적인 연대사업으로는 후원인을 늘리기 쉽지 않을 거예요. 바람의 독자사업으로 페미니즘에 기반 한 인권운동이 뭔지를 보여주고 저변을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바람이 자기사업이나 회원사업에만 치중하면서 고립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중심을 단단하게 하되 밖과 소통하면서 나가는 게 중요하니까요.
요즘 코로나 19로 인권운동가들이 고민이 많은데 박 소장님은 어떤가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와 달라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에요 재난은 가장 취약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오고 그 타격이 심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어요. 그에 대응하는 공공성도 얼마나 취약한지도 드러났고요. 그런데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공성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도 드러났지요. 코로나19 이후의 사회가 달라지도록 인권운동진영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바람을 후원하라는 응원하는 한마디?
바람의 활동을 늘리려면 후원도 많아야 합니다. 후원해주세요! 제 동생이 쓴 시구로 후원의 말을 대신할게요. “바람일수는 없다. 바람이려거든/한번 불어 북새풍을 쓸어가는/그런 바람이거라”
인터뷰 말미에 박 소장님이 액자에 걸린 박래전 열사의 시 <바람일수는 없다>를 가리켰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산하하신 박래전 열사는 박래군 소장님의 동생이기도 한데, 인권중심 사람 건물에는 박래전 열사의 추모도서관이 있습니다.
끝으로 시 <바람일수는 없다>를 후원인 및 회원 분들과 나눠봅니다.
바람일 수는 없다
- 박래전
바람일 수는 없다
한번 불어 흙먼지 일으키고
사라져가는 바람일 수는 없다
마른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일 수는 없다
땅 적시고 마르는
빗방울일 수는 없다
바람이려거든
한번 불어 북새풍을 쓸어가는
그런 바람이거라
그런 바람이거라
물이려거든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이거라
목마른 자, 메마른 땅
쉬임없이 적시는 그런 샘이거라
소식지 3호 - 2020년 4월
[살랑살랑 ‘후원인의 바람’] - 박래군 님
북새풍을 쓸어가는 그런 바람이 되기를
- 박래군 님 인터뷰 (정리: 명숙)
인권운동네크워크 바람(약칭 인권운동 바람)의 후원인인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님을 만났습니다. 박 소장님은 인권운동 바람의 1호 후원인이기도 합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인권의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만났습니다.
인권중심 사람에서 일한지는 얼마나 되나요?
2004년에 인권재단 사람을 만들었고, 재단이 2013년에 인권센터인 인권중심 사람을 만들었어요. 인권센터를 만들기 전까지는 인권단체 일을 하면서 재단 일을 겸업을 했어요. 용산참사 투쟁으로 감옥에 갔다 오고 나서 인권재단을 키우려고 전업을 한 거지요. 벌써 10년이 됐네요.
인권재단을 만든 이유는 인권단체들이 대부분 재정이나 인원이 열악하기 때문이었어요. 다른 시민단체들과 비교해도 인권단체들은 후원규모도 적고 활동가들의 숫자도 적어요. 사실 인권단체들은 재벌이나 정부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다보니 기업에서도 후원을 잘하지 않아요. 유니세프 같은 국제구호단체들에 후원을 하더라도 국내인권단체들에는 후원을 안 해요.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정치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인권운동이 정치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시절, 기업이나 정부 부처가 이러한 단체를 후원했다가 불이익을 받은 경험이 있다 보니 더 꺼려하지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열악한 인권단체들을 지원하는 일이 인권재단의 일이죠.
박 소장님이 인권운동을 한지가 꽤 됐는데요, 인권운동의 변화가 체감되는 게 있다면 어떤 면이 있나요? 제가 보기에는 10년 전과 다르게 작지만 충남이나 포항에도 인권단체들이 생겨난 게 보이는데요.
새로운 인권단체들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인권운동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여전히 대부분의 인권단체들은 규모가 작지요. 재정도 그렇고요.
그런 상태에서 인권의 제도화, 즉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권조례를 만들고 지역 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국가인권위원회 지역사무소도 만들어졌으나 그게 인권운동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은 거죠. 그렇다보니 인권운동이 인권의 제도화에 빨려 들어가기 쉽기도 하고요. 긴장과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지요. 그 외에도 인권교육을 하는 공공기관이 늘어났으나 그런 인권교육을 인권단체들이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인권교육의 시장화도 하나의 원인이긴 하지만 그보다도 관에서는 인권단체들이 하는 걸 원하지는 않아요. 인성교육과 차별이 없는 ‘말랑말랑한 인권교육’을 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인권활동가들이 인권의 역사를 교육하면 저항권을 얘기하지만 관에서 수료증을 발급하면서 의뢰하는 단체나 교육가는 그런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죠.
장애인권단체, 성소수자인권단체, 청소년단체들은 10년 전에 비하면 굉장히 많이 생긴 것 같은데, 말씀하시는 건 흔히 말하는 일반인권단체인가요?
맞아요. 소수자인권을 하는 단체는 많아졌어요, 소수자운동의 성장과 투쟁의 결과이지요. 그에 반해 인권 일반을 하는 단체들은 전체적으로는 늘지 않았어요.
거칠게 분류하면 ‘인권운동 바람’ 은 말씀 하신 일반 인권단체인데, 그러면 바람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했는지는 아시나요? 하하.
잘은 몰라요. 소식지를 못 봐서 그런가. 하하. 페미니즘으로 쓴 인권선언을 했다고 들었고, 그 외에는 노동자들 투쟁에 연대하는 걸 주로 들었던 거 같아요. 다른 단체와의 차별성은 연대사업보다는 독자사업으로 드러나는데, 그게 적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래도 현장에서 연대요청을 하면 거절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리고 이건 다른 차원의 고민이긴 한데, 왜 노동 분야의 요구가 10년 전과 다르지 않을까, 고민이 돼요. 여전히 비정규직 철폐, 손해배상 철폐 등이 주요 요구로 나오는데 이러한 현실을 바꾸는 게 현안 대응 대책위로만 안 되잖아요. 이 부분에 대해 민주노총을 비롯해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면 ‘인권운동 바람’ 후원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요?
명숙 활동가 때문이지요. 명숙 활동가와는 이전에 같은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했고, 국가인권위원회 혁신위원으로 같이 일하기도 해서 후원했어요.
‘인권운동 바람’ 은 페미니즘에 기반한 인권운동을 표방하고 있는데요, 2018년에는 젠더갑질실태조사와 페미니즘 선언, 장애인노동권, 여성노동자인권을 주로 했어요.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어떤지요?
제가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이니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많지요. 페미니즘은 역동적이기도 하고 페미니즘의 가치가 모든 차별에 대한 반대이니 인권운동과 밀접하지요, 역사적으로도 소수자인권의 증진에도 페미니즘이 큰 역할을 했고요. 그래서 관심은 많아요. 물론 최근 페미니즘의 다른 갈래들의 행보를 보면 우려가 될 때도 있어요. 숙대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과 관련한 논쟁, 여성의 당에서 재벌에게 후원을 요청하는 등 인권운동과 페미니즘의 지향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주는 사건이 많았잖아요.
노동자투쟁에 연대하더라도 ‘인권운동 바람’ 이 하면 연대단위에 성인지 감수성이나 소수자감수성을 불어넣는 역할을 주로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바람이 좀 더 주력했으면 하는 게 있다면?
연대활동을 통해 운동의 감수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직 운동사회는 가부장적이기는 하니까요. 그렇다면 더더욱 바람의 독자사업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요? 바람이 어떤 곳인지를 알릴 수 있는 활동을 선명하게 하면 좋겠어요. 독자사업 이후에도 홍보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바람이 사람들에게 인식되니까 홍보활동도 중요하고요. 일반적인 연대사업으로는 후원인을 늘리기 쉽지 않을 거예요. 바람의 독자사업으로 페미니즘에 기반 한 인권운동이 뭔지를 보여주고 저변을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바람이 자기사업이나 회원사업에만 치중하면서 고립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중심을 단단하게 하되 밖과 소통하면서 나가는 게 중요하니까요.
요즘 코로나 19로 인권운동가들이 고민이 많은데 박 소장님은 어떤가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와 달라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에요 재난은 가장 취약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오고 그 타격이 심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어요. 그에 대응하는 공공성도 얼마나 취약한지도 드러났고요. 그런데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공성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도 드러났지요. 코로나19 이후의 사회가 달라지도록 인권운동진영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바람을 후원하라는 응원하는 한마디?
바람의 활동을 늘리려면 후원도 많아야 합니다. 후원해주세요! 제 동생이 쓴 시구로 후원의 말을 대신할게요. “바람일수는 없다. 바람이려거든/한번 불어 북새풍을 쓸어가는/그런 바람이거라”
인터뷰 말미에 박 소장님이 액자에 걸린 박래전 열사의 시 <바람일수는 없다>를 가리켰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산하하신 박래전 열사는 박래군 소장님의 동생이기도 한데, 인권중심 사람 건물에는 박래전 열사의 추모도서관이 있습니다.
끝으로 시 <바람일수는 없다>를 후원인 및 회원 분들과 나눠봅니다.
바람일 수는 없다
- 박래전
바람일 수는 없다
한번 불어 흙먼지 일으키고
사라져가는 바람일 수는 없다
마른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일 수는 없다
땅 적시고 마르는
빗방울일 수는 없다
바람이려거든
한번 불어 북새풍을 쓸어가는
그런 바람이거라
그런 바람이거라
물이려거든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이거라
목마른 자, 메마른 땅
쉬임없이 적시는 그런 샘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