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신고의 온도와 공익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모든 신고는 정의로운가, 위법 사항을 알리면 다 공익 신고일까.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대다수는 아니라고 하겠지요.
최근 온라인 상에서 어떤 이가 쓴 호소글이 화제가 됐습니다. 그는 회사 근처에 있는 청소년이 운영하는 노점상이 지저분하게 즉 비위생적으로 가게를 운영한다고 신고한 이후의 주변 반응 때문에 힘들다고 했습니다. 회사 동료들이 비난하고 자신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왜 공익신고, 범죄신고를 했는데 오히려 따돌림을 당하냐는 호소했습니다. 청소년이 하던 노점은 이전에는 할아버지가 하던 붕어빵 노점이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청소년이 나와 운영했다고 합니다. 노점상인 청소년과 할아버지를 알고 있는 직원들은 그가 불법 노점 신고라는 매정한 행위에 놀랐겠지요.
저도 그 글을 읽고 진짜 이런 일이 있을까 의심했습니다. 글쓴이는 청소년이 겪었을 경제적 어려움, 할아버지가 죽고 나서 보낼 그 허망하고 외로운 사정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니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실제 그 일이 사실이건 소설이건 우리에게 공익이란 무엇인지, 신고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위의 신고를 누군가 행동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비위생적인 노점을 신고했으니 잘한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여주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는 돌아봐야 하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그가 한 신고의 온도는 차가웠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 쓰러진 사람을 병원으로 옮겨달라는 신고와는 타인에 대한 냉랭함이 느껴집니다.
게다가 법이 항상 옳거나 윤리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점상을 단속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합니다. 누구든 먹고 살 수 있도록, 그것이 타인의 신체와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아니라면 보장해줘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그래서 노점상 운동에서는 몇 년 동안 노점상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운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국회에서는 법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노점상이 세금이 안 내는 것이 문제고 위생이 문제라면 그것을 관리 감독하고 세금도 내게 하면 될 일이라는 것을 법에 담고 있습니다. 법의 틀이 잘못됐기에 그 법체계를 바꾸자는 취지로 노점상들은 입법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무조건 탄압하고 노점 물건을 압수하며 생계를 끊는 현실이 참혹하니까요.
만약 위의 글쓴이가 비위생적인 노점이 걱정되었다면 신고가 아닌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요. 노점을 노점상에게 위생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알려주거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집하거나 하는 방식 말입니다. 청소년이 생존을 위해 나온 노점상을 철거하도록 신고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도 그런 방안을 강구하지 않고 신고했기에 주변 사람들이 경악한 것일 겁니다. 그렇게 차가운 사람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을테니까요. 그의 위생에 대한 불안을 해결하는 다른 방법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방법은 신경도 노력도 많이 듭니다. 그에 비해 신고는 간단합니다. 경찰에 전화 한 통 걸면 다 해결되니까요.
아예 그가 노점을 이용하지 않으면 더 간단합니다. 그러나 신고라는 수고로움까지 했다는 사실은 주변 사람들을 더 경악하게 했을 겁니다. 위생적인 노점 음식을 먹고 싶다는 개인의 욕구(권리), 자신의 이해가 앞섰던 것이 아닐까요? 신고의 목표가 개인의 이해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이기적이라고 주변 동료들이 느꼈을 수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해만을 앞세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홀로 살 수 없는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과 처지에 대해 생각하려는 노력은 공감의 시작입니다. 항상 내 이익과 입장에서만 생각할 때, 공감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위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저는 위법 사항에 대한 신고는 다 공익신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법적으로는 공익일 수 있지만 공존(함께살자)과 공공성의 관점에서 위 신고는 공익신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정의롭지 않기에, 법이 약자가 아닌 강자, 권력이 있는 기득권 주류의 입장에서 만들어졌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다양한 억압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의 위치성과 요구, 권리를 통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항상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접근과 통찰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렇게 해야 주변과 소통할 수 있고, 공감 능력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법질서로 주류세력의 안정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요?
(사진-위 최인기, 아래 박철균)

[활동가의 편지] 신고의 온도와 공익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모든 신고는 정의로운가, 위법 사항을 알리면 다 공익 신고일까.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대다수는 아니라고 하겠지요.
최근 온라인 상에서 어떤 이가 쓴 호소글이 화제가 됐습니다. 그는 회사 근처에 있는 청소년이 운영하는 노점상이 지저분하게 즉 비위생적으로 가게를 운영한다고 신고한 이후의 주변 반응 때문에 힘들다고 했습니다. 회사 동료들이 비난하고 자신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왜 공익신고, 범죄신고를 했는데 오히려 따돌림을 당하냐는 호소했습니다. 청소년이 하던 노점은 이전에는 할아버지가 하던 붕어빵 노점이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청소년이 나와 운영했다고 합니다. 노점상인 청소년과 할아버지를 알고 있는 직원들은 그가 불법 노점 신고라는 매정한 행위에 놀랐겠지요.
저도 그 글을 읽고 진짜 이런 일이 있을까 의심했습니다. 글쓴이는 청소년이 겪었을 경제적 어려움, 할아버지가 죽고 나서 보낼 그 허망하고 외로운 사정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니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실제 그 일이 사실이건 소설이건 우리에게 공익이란 무엇인지, 신고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위의 신고를 누군가 행동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비위생적인 노점을 신고했으니 잘한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여주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는 돌아봐야 하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그가 한 신고의 온도는 차가웠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 쓰러진 사람을 병원으로 옮겨달라는 신고와는 타인에 대한 냉랭함이 느껴집니다.
게다가 법이 항상 옳거나 윤리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점상을 단속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합니다. 누구든 먹고 살 수 있도록, 그것이 타인의 신체와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아니라면 보장해줘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그래서 노점상 운동에서는 몇 년 동안 노점상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운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국회에서는 법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노점상이 세금이 안 내는 것이 문제고 위생이 문제라면 그것을 관리 감독하고 세금도 내게 하면 될 일이라는 것을 법에 담고 있습니다. 법의 틀이 잘못됐기에 그 법체계를 바꾸자는 취지로 노점상들은 입법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무조건 탄압하고 노점 물건을 압수하며 생계를 끊는 현실이 참혹하니까요.
만약 위의 글쓴이가 비위생적인 노점이 걱정되었다면 신고가 아닌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요. 노점을 노점상에게 위생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알려주거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집하거나 하는 방식 말입니다. 청소년이 생존을 위해 나온 노점상을 철거하도록 신고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도 그런 방안을 강구하지 않고 신고했기에 주변 사람들이 경악한 것일 겁니다. 그렇게 차가운 사람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을테니까요. 그의 위생에 대한 불안을 해결하는 다른 방법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방법은 신경도 노력도 많이 듭니다. 그에 비해 신고는 간단합니다. 경찰에 전화 한 통 걸면 다 해결되니까요.
아예 그가 노점을 이용하지 않으면 더 간단합니다. 그러나 신고라는 수고로움까지 했다는 사실은 주변 사람들을 더 경악하게 했을 겁니다. 위생적인 노점 음식을 먹고 싶다는 개인의 욕구(권리), 자신의 이해가 앞섰던 것이 아닐까요? 신고의 목표가 개인의 이해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이기적이라고 주변 동료들이 느꼈을 수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해만을 앞세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홀로 살 수 없는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과 처지에 대해 생각하려는 노력은 공감의 시작입니다. 항상 내 이익과 입장에서만 생각할 때, 공감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위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저는 위법 사항에 대한 신고는 다 공익신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법적으로는 공익일 수 있지만 공존(함께살자)과 공공성의 관점에서 위 신고는 공익신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정의롭지 않기에, 법이 약자가 아닌 강자, 권력이 있는 기득권 주류의 입장에서 만들어졌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다양한 억압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의 위치성과 요구, 권리를 통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항상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접근과 통찰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렇게 해야 주변과 소통할 수 있고, 공감 능력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법질서로 주류세력의 안정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요?
(사진-위 최인기, 아래 박철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