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편지] 고공 끝에 삶이 놓이기를 바라며 연대를!

[활동가 편지] 고공 끝에 삶이 놓이기를 바라며 연대를!

 

명숙(상임활동가)

 

어제(10월1일) 세종호텔 정리해고자 고진수 동지가 고공농성을 한 지 231일인데 곧 추석을 맞이합니다. 이 건조한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아픈 날입니다. 어제는 세종호텔 공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수달 활동가가 릴스 (짧은 동영상)를 만들었습니다. 고진수 동지가 연대자 없는 일요일 해질 무렵에 부른 노래로 만든 영상을 보니 홀로 견뎌야 할 외로움이 느껴져 너무나 아팠습니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추석에 오래도록 못 만난 가족을 만나고픈 그 마음이 사무치게 다가와서 지금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물론 고진수 동지의 고공농성도 노조가 함께 결정한 투쟁이기에 홀로 있어도 혼자 하는 싸움은 아닙니다. 아래서도 다른 조합원들이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인간이란 개별적인 몸뚱이와 그 몸뚱이가 치러내는 고통과 감정은 홀로 감당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한 몸뚱이가 다른 몸뚱이를 만나 눈빛도 교환하며 힘도 얻을 기회도 빼앗긴 채 고공의 생활을 해야 하는 힘듦이 그려집니다.

 

그렇게 외로움을 이겨내고 버티며 싸우는 이유는 정리해고가 부당하고 부당함을 복직을 통해서만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년 9개월 만에 열린 사측 교섭에서 아직까지도 복직안을 가져오지 않고, 명예복직을 운운하고 보상안을 말합니다. 나희덕의 <땅끝>의 시구처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이 땅끝입니다. 아니 고진수 동지가 있는 하늘 끝 고공이란 생각마저 듭니다.

 

그러나 인권운동을 오래 한 저로서는 공감의 힘, 연대의 힘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칩니다.

인간에게 권리가 있고 존엄한 존재라는 발상, 발명도 개별적인 인간이 각자의 고유성에 대한 인정과 공감이 바탕입니다. 이어지는 시구처럼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은 바로 연대가 아닐까요. 연대와 저항의 힘으로 고공의 끝이 삶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개별 존재의 고유한 삶에서도 인간으로서 느끼는 공통의 생애가 있고 그래서 희노애락의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게 힘이 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연대권은 인권운동에서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연대는 하나의 싸움이 하나의 싸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고진수 동지를 생각하며 2020년 12월 비닐하우스에서 홀로 죽어간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 님을 떠올리기도 하고, 지금도 집단 학살로 생존의 위기를 겪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고통 받고 싸우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곁에 서서 저항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래서 제가 바쁜가 봐요 하하.)


 *사진 비주류사진관 전병철, 명숙b6291b97ce4fb.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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