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활동가편지> 우울한 일상에 머물지 않도록 낙관하되 긴장을 늦추지 않을래요

<상임활동가편지> 우울한 일상에 머물지 않도록 낙관하되 긴장을 늦추지 않을래요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여러분들은 윤석열 파면시키고 무엇을 했나요? 우선 계절의 변화는 느끼셨나요? 사람 마음이 팍팍하면 밖을 잘 보기 어렵죠. 저도 윤석열이 파면 되니까 그제야 목련이며 벚꽃이며 개나리며 보이더라고요. 아, 정말 봄이 왔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파면되고 맞이한 휴일에 봄맞이 겸 기분 전환 겸 머리모양을 바꿨어요. 싹둑 잘랐어요. 원래 2025년 되면 머리모양을 커트로 해야지 마음먹었는데,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때문에 많이 늦어졌네요. 누군가는 윤석열과 헤어지고 난 후의 머리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어요.

 

그럼 다들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신 걸까요? 윤석열 파면 촉구 집회에서도 외친 구호 중 하나가 “윤석열은 감옥으로, 시민들은 일상으로”였잖아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일상으로 돌아온 듯 하지만, 저는 사실 12.3 계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전의 일상은 차별과 착취가 난무한 일상이었으니까요. 저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파면 이후에 사회대개혁을 이루자고 했어요. 비상행동도 그를 위한 개혁과제들을 제시하였지요. 파면은 그걸 이루기 위한 싸움의 시작이라고요.

 

그런데, 사실 파면 전에도 윤석열 퇴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열망, 요구가 다 동일하지는 않았어요. 어떤 이들은 여전히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기도 했고,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의 권리를 논하는 것을 꺼리기도 했으니까요. 더불어민주당이 재벌 특혜를 위한 반도체특별법 제정하려고 해서 이에 대한 반대를 했더니 어떤 이들은 ‘광장 분열’이라고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윤석열이 파면됐으니 ‘같지 않음’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겠지요. 아스팔트우익 집단, 내란세력을 종식 시키기 위해 우리의 요구를 낮춰야 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보아요. 오히려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 사회적 소수자도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더 아름답고 평등하고 존엄한 세상이라고 그들을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요? 비인간동물의 생명의 공존도 인정받는 세상, 기후 위기에 맞서는 기후정의를 위한 정치가 필요한 세상, 가난한 사람들이 집과 거리에서 쫓겨나지 않는 세상, 팔레스타인에 대한 집단학살을 막는 한국정치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보고 싶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내란세력만 막는다고 우리의 일상이 평온하지는 않지 않을까요.

 

물론 정치공학적 논리가 대선에서 득세할 것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중요한게 아니라 내란세력 재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정말 차별의 일상, 원점,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 용기를 내 한 발 더 존엄과 평등으로, 나아가자고 말해야 합니다. 광장에서 발견한 연대와 환대의 경험,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언어, 소수자들의 발언에서 확인한 체제의 문제들을 나누며 우리는 새로운 힘과 가능성을 보았잖아요.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침묵을 하든 말든 가부장체제와 자본주의 체제는 작동을 할 테니, 우리는 계속 말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구나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우울합니다. 배를 만드는 거통고 조선하청노동자 김형수가 30M CCTV 철탑에 있고, 호텔요리사 세조호텔지부 고진수가 호텔 앞 도로교통시설에 올라가 있고, 일본 먹튀자본 니토덴코가 화재를 핑계로 고용승계를 안하고 있어 핸드폰 등에 들어가는 편광필름을 만드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 박정혜, 소현숙이 458일 넘게 공장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전히 사회는 여성혐오문화에 젖어 있고 성폭력 피해자는 고통받고 있으니까요. 더 충격적인 것은 헌재가 대통령 탄핵재판 선고기일을 고지하던 날,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성폭력 가해자 장제원은 책임을 지기보다는 목숨을 끊었습니다. 9년 전 대학교 부총장 시절 강간한 책임을 끝까지 부인했습니다. 소설 <시선으로부터>의 구절처럼 어떤 죽음은 가해,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입니다. 그의 최종적 가해로 9년 만에 용기 낸 피해자가 겪을 고통을 어찌 이루 말하겠습니까. 성폭력 없는 사회는 제도와 관행이 함께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해자에게 동조하는 문화, 성범죄자를 가볍게 처벌하는 사법부가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우울한 일상이지만 광장에서 새롭게 만난 동지들의 웃음과 온기를 기억하며 낙관하렵니다. 봄을 맞이하렵니다. 제 낙관은 그냥 낙관이라기보다 ‘긴장하고 실천하는 낙관’입니다. 우울을 떨친다기보다 우울한 차별의 일상을 실천으로 에워싸고자 합니다. 바람님들도 함께 하신다면, 제 웃음은 더 봄날을 닮겠지요.

 

윤석열을 보내느라 긴 넉 달을 함께 보낸 바람님들께 고마움을 전하며

- 명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