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발언] 73차 지하철 타기 행동에 함께 했어요
2021년부터 4년 동안 이어온 출근길 지하철행동인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에 대해 이재명 정부의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시위를 할수록 예산이 깎일 수 있다는 협박 같은 말을 SNS 에 올려 모두를 화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73차 행동에는 더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집회시위의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 것인데 시위하면 예산이 준다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반인권적입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의무입니다. 버스도 지하철도 장애인이 타기에 나쁜 조건으로 만든 비장애인 중심의 시설과 관행, 제도가 문제입니다. 지난 8월초에는 버스타기에 함께 했는데 이번에는 지하철타기에 함께 했습니다. (버스타기 후기와 발언문은 요기로)
언론에서 정부 말만 듣고 지하철타기 중단한다는 오보를 내는 바람에 이날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언론이 왔어요. 명숙 활동가도 분노의 마음으로 지하철행동에 함께 했습니다.
73차 행동을 마친 다음날 전장연은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서울특별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과 「서울특별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 지원 조례 일부개정안」을 25일 제339회 서울특별시의회(임시회)에서 1호·2호 당론으로 발의하여 9월11일 통과시키겠다고 최종 결정했습기에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잠시 멈추기로 했습니다.
아래에 명숙 활동가의 발언문을 싣습니다.
[전장연 지하철 출근길 발언문] 73차 260824
안녕하세요. 저는 인권운동 네트워크 바람이라는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명숙입니다.
저는 어제 요즘 유행하는 <오디세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 안 보신 분들도 워낙 TV에서 많이 나와서 <오디세이> 영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인 영웅담과 귀향을 담은 영화라는 정도는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그 영화 때문에 그리스 문화와 정치, 그리스 신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요. 그 영화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라는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 영화하고 합니다. 당시에 시나 연극이 극장에서 낭송되고 상연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극장은 문화 향유의 의미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는 여러분이 많이 들었던 직접 민주주의의 산실이라는 평가를 떠올리면, 극장에서 서사시를 듣고 연극을 보면서 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했답니다.
그걸 떠올려보니 서울교통공사가 방해 방송을 하면서 저희의 발언에 대해 <고성을 지르지 말라>고 했는데 비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고성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은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리스인들이 극장에서 정치에 대해서 민주주의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처럼 장애인들이 지하철 승강장인 이곳에 있는 이유입니다.장애인도 시민의 한 사람이라고 장애인을 배제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장애인을 위한 예산이 포함되어야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얘기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저 지하철 직원은 계속 고성이라고 표현하지만, 고성이 장애인들의 의견, 시민들의 의견으로 들릴 때까지 우리는 전철에서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계속할 것이죠. 장애인도 시민으로 바라보라는 그런 의견을 말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리스 정치를 말하는 공론장 중의 하나가 극장이었듯이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 공간이 이 지하철 타기 아닙니까? 고성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의견으로 들릴 때까지 함께 연대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직접 민주주의 산실이었던 그리스 시대에도 여성과 그리고 노예들은 민주주의의 주체가 아니었습니다. 민회라고 하는 민주주의 공간에서 자유인이 아닌 자들은 의견을 발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싸워서 여성 참정권도 노예가 없는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시민으로 취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를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계속 외쳤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확장되었고 인권의 영역은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고 멀기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곳에서 우리는 장애인 예산을 포함하는 것이 민주주의고 말로만은 장애인 인권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 정치란 개인적인 사안이 아니라 공통적인 것, 공공적인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정치라고 보았다고 합니다. 장애인 이동권이나 장애인 예산은 모두 공공적인 것입니다. 정치의 사안입니다.
정부는 3대 메가 프로젝트에 392조를 책정하지만 왜 장애인을 위한 예산은 없느냐고 우리는 계속 얘기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정치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말로만 장애인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 대해서 비판하시는 분들도 이른바 고관대작들에게, 즉 고위 정치들에게 함부로 얘기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를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영화 오디세이에서 제우스의 법이란 문구가 많이 나옵니다. 누구든 낯선 이둘, 이방인 부랑인 장애인을 환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이 그들의 형상으로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오히려 장애인이나 홈리스 가난한 사람에게 함부로 대합니다. 노골적인 편견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저는 제우스의 법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장애인도 민주주의의 일원이라고 하는 존엄의 법, 평등의 법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제우스의 법이 그리스신화에서 최소한 평등을 위한 기본 지침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평등의 법이 라는 것을 우리 시민들에게 익숙하게 익힌다라면 적어도 가난하다고 장애인이라고 홈리스라고 차별하는 행동들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제우스의 법이라고 표현했던 걸 차용하면, 전장연의 법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전장연의 시위에 대해서 환대할 수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야말로 평등과 존엄으로 한 발짝 앞당기는 사람들 아닐까요?
맞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전장연의 시위를 불편으로 여기지 않고 평등과 민주주의로 한 발 나서는 것이라고 인식될 때까지 저도 그 길에 함께하겠습니다.



[후기/발언] 73차 지하철 타기 행동에 함께 했어요
2021년부터 4년 동안 이어온 출근길 지하철행동인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에 대해 이재명 정부의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시위를 할수록 예산이 깎일 수 있다는 협박 같은 말을 SNS 에 올려 모두를 화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73차 행동에는 더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집회시위의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 것인데 시위하면 예산이 준다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반인권적입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의무입니다. 버스도 지하철도 장애인이 타기에 나쁜 조건으로 만든 비장애인 중심의 시설과 관행, 제도가 문제입니다. 지난 8월초에는 버스타기에 함께 했는데 이번에는 지하철타기에 함께 했습니다. (버스타기 후기와 발언문은 요기로)
언론에서 정부 말만 듣고 지하철타기 중단한다는 오보를 내는 바람에 이날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언론이 왔어요. 명숙 활동가도 분노의 마음으로 지하철행동에 함께 했습니다.
73차 행동을 마친 다음날 전장연은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서울특별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과 「서울특별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 지원 조례 일부개정안」을 25일 제339회 서울특별시의회(임시회)에서 1호·2호 당론으로 발의하여 9월11일 통과시키겠다고 최종 결정했습기에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잠시 멈추기로 했습니다.
아래에 명숙 활동가의 발언문을 싣습니다.
[전장연 지하철 출근길 발언문] 73차 260824
안녕하세요. 저는 인권운동 네트워크 바람이라는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명숙입니다.
저는 어제 요즘 유행하는 <오디세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 안 보신 분들도 워낙 TV에서 많이 나와서 <오디세이> 영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인 영웅담과 귀향을 담은 영화라는 정도는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그 영화 때문에 그리스 문화와 정치, 그리스 신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요. 그 영화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라는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 영화하고 합니다. 당시에 시나 연극이 극장에서 낭송되고 상연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극장은 문화 향유의 의미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는 여러분이 많이 들었던 직접 민주주의의 산실이라는 평가를 떠올리면, 극장에서 서사시를 듣고 연극을 보면서 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했답니다.
그걸 떠올려보니 서울교통공사가 방해 방송을 하면서 저희의 발언에 대해 <고성을 지르지 말라>고 했는데 비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고성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은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리스인들이 극장에서 정치에 대해서 민주주의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처럼 장애인들이 지하철 승강장인 이곳에 있는 이유입니다.장애인도 시민의 한 사람이라고 장애인을 배제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장애인을 위한 예산이 포함되어야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얘기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저 지하철 직원은 계속 고성이라고 표현하지만, 고성이 장애인들의 의견, 시민들의 의견으로 들릴 때까지 우리는 전철에서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계속할 것이죠. 장애인도 시민으로 바라보라는 그런 의견을 말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리스 정치를 말하는 공론장 중의 하나가 극장이었듯이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 공간이 이 지하철 타기 아닙니까? 고성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의견으로 들릴 때까지 함께 연대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직접 민주주의 산실이었던 그리스 시대에도 여성과 그리고 노예들은 민주주의의 주체가 아니었습니다. 민회라고 하는 민주주의 공간에서 자유인이 아닌 자들은 의견을 발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싸워서 여성 참정권도 노예가 없는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시민으로 취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를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계속 외쳤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확장되었고 인권의 영역은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고 멀기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곳에서 우리는 장애인 예산을 포함하는 것이 민주주의고 말로만은 장애인 인권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 정치란 개인적인 사안이 아니라 공통적인 것, 공공적인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정치라고 보았다고 합니다. 장애인 이동권이나 장애인 예산은 모두 공공적인 것입니다. 정치의 사안입니다.
정부는 3대 메가 프로젝트에 392조를 책정하지만 왜 장애인을 위한 예산은 없느냐고 우리는 계속 얘기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정치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말로만 장애인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 대해서 비판하시는 분들도 이른바 고관대작들에게, 즉 고위 정치들에게 함부로 얘기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를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영화 오디세이에서 제우스의 법이란 문구가 많이 나옵니다. 누구든 낯선 이둘, 이방인 부랑인 장애인을 환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이 그들의 형상으로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오히려 장애인이나 홈리스 가난한 사람에게 함부로 대합니다. 노골적인 편견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저는 제우스의 법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장애인도 민주주의의 일원이라고 하는 존엄의 법, 평등의 법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제우스의 법이 그리스신화에서 최소한 평등을 위한 기본 지침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평등의 법이 라는 것을 우리 시민들에게 익숙하게 익힌다라면 적어도 가난하다고 장애인이라고 홈리스라고 차별하는 행동들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제우스의 법이라고 표현했던 걸 차용하면, 전장연의 법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전장연의 시위에 대해서 환대할 수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야말로 평등과 존엄으로 한 발짝 앞당기는 사람들 아닐까요?
맞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전장연의 시위를 불편으로 여기지 않고 평등과 민주주의로 한 발 나서는 것이라고 인식될 때까지 저도 그 길에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