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수다회-“달콤한 광장, 나는 왜 광장에 나왔나?”
윤석열 대통령이 반인권적인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우리의 삶과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윤석열 탄핵과 파면을 외치는 광장에서 민주주의의 다양한 주체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2030여성퀴어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젠더노소 가릴 것이 없는 경이로운 연대와 환대의 모습은 달콤해서, 연대와 환대의 달콤함을 나누고자 바람이 수다회를 열었습니다.
지난 2월 18일 저녁 “달콤한 광장, 나는 왜 광장에 나왔나?”는 주제로 수다회가 이태원참사추모의 집인 별들의집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평일 저녁임에도 60명 정도가 참여했습니다. 광장에 모인 2030여성/퀴어들은 윤석열 퇴진만이 아니라 투쟁하는 농민들, 장애인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고자들에게 연대했습니다. 민주주의 확장이 펼쳐지는 감동을 함께 나누고자 한 수다회였습니다.
본격적인 수다회가 시작되기 전에 광장에서의 감동을 나누는 <나는 00 때문에 광장이 달콤했다>는 인증샷을 했습니다. ‘동지 ’때문에 ‘사람’ 때문에 광장이 달콤했다는 문구도 있었고, ‘다양성과 포용’ 때문에 달콤했다는 사람도 있었다는 문구에서 광장의 환대가 느껴졌습니다.
바람의 상임활동가 명숙의 진행으로 시작된 수다회의 첫 발언은 이태원참사 유가족이신 고 이상은 님의 이모부님과 아버님이 해주셨어요. “이태원참사나 오송참사 등 민주주의의 역행이 내란세력으로 인해서 생긴 문제였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광장에서 만날 수 있었는지모른다”며,“광장에서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느꼈다”고 소회를 나눠주셨어요.
광장으로 나오며
페미니스트 인권운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명숙 활동가처럼 다들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남태령에서 밤샌 ‘선택받은아이들 내일찾기위원회’ 깃발을 들고 다니는 모레 님은 세월호참사, 메르스 이후의 페미니즘 리부트와 백래시를 경험해서 “과거에 나에게 지금 나가지 않는 게 너무 부끄럽겠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며 비상계엄 다음날부터 나왔다고 해주셨습니다. “12월 3일에는 생계에 묶여서 나가지 못했었는데 그게 너무 부끄럽고 뛰쳐나간 분들한테 죄송해서 나가게 된 것 결국 기본적으로는 부끄러움 그리고 떳떳하고 싶은 마음, 나와 나의 동료 시민에게 떳떳하고 싶은 마음으로 뛰쳐나갔다.”
전장연의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로’라는 슬로건으로 지하철선전전에 연대한 동덕여대 재학생 재이님은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오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습니다. 11월부터 동덕여대에서 벌어진 비민주적 행위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탄압하는 학교측의 입장을 대변하며 학생들을 폭도로 몰아가는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나가는 게 맞다, 이게 좀 우리가 나라가 바로 서지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의 학내 상황이 세워질 수 있겠느냐” 그런 말을 하며 나왔는데 “막상 저희가 간 광장은 저희가 예상한 거랑 너무 달랐던 모습이었어요. 위험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민주동덕 깃발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그러다가 전장연 지하철 다이인 행동을 하고 함께 연대하면서 동덕여대까지 행진하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또 살면서 언제 지하철 역사에 누워 보겠어요? 전장면에서 늘 틀어주는 노래가 있거든요.우리는 다 똑같이 사람들인데 이제 우리만 놓고 전차가 떠나가고 민주주의는 물 건너 간다 그런 노래를 듣는데 되게 멜로디는 좋은데 울컥하는 거예요. 정말 당연한 권리인데 이게 지켜지지 않으니까 ”
남태령을 넘어 세종호텔까지
윤석열 구속과 파면을 요구하며 트랙터 등을 몰고 상경 시위에 나선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전봉준 투쟁단’은 12월 21일 밤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에 가로막히자 시민들이 밤에 달려가 경찰을 물러나도록 했다. 추운 동지밤을 고립된 농민들과 함께 한 승리였다. 그날 밤에 있었던 모레 씨는 명숙 활동가가 말한 광장이 연대와 환대의 장소였다는 것에 동의하며 말을 이었다.
“남태령과 같은 혹은 남태령 이후의 경장들에서 제가 느꼈던 건 우리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고립될 게 아니라 되게 혼종적인 상태로 함께 있어야 하는구나라는 걸 남태령이 가르쳐줬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남태령에서 사람들이 모인 것 자체가 그거였잖아요. 고립되어 있고 수가 적으면 경찰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나라도 가서 같이 있어야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다라는 감각이 남태령에서 좀 공유가 많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방식에 함께 함이 오히려 더 안전할 수 있고 고립되려고 하는 마음이 더 위험하거나 폭력에 취약해질 수 있다라는 감각을 저는 정말 체감을 했던 것 같고요.”
그러다 을지로의 한화오션 빌딩 앞에서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비정규노동자들이 천막을 치려다 다쳤다고 해서 “내가 여기서 가버리면 나를 환영해 줬던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고 했습니다. 12월 31일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에서 성중립숙소를 만들며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동지들을 존중해줬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계엄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거통고 농성천막과 세종호텔에서 멜로디언 연주를 하며 연대를 하는 멜로디언 동지는 “ 범성애를 하는데 제 주변에 퀴어가 거의 없었고 제가 제일 특이한 사람이었다. 광장에는 내가 평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양한 퀴어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개념도 듣고 새로운 사랑의 형태 다른 성별도 알게 되며 진짜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이제 다시 계엄 전날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며 광장에서 배운 것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통고 하청노동자들이 천막을 치던 날 근처에서 농성하고 있는 세종호텔 해고자들이 와주어서 밤새 농성장을 지켜주어 연을 이었던 세종호텔지부 허지희 사무장은 광장에 처음 나갈 때는 노조의 투쟁과 비상계엄을 막는 것이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며 세종호텔지부가 끝장투쟁이라고 불리는 고공농성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연대자들의 힘을 보며 “매일의 감동은 사람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 사랑보다 더 큰 응원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생각의 지평이 나를 넘어서서 타인에게까지 가게 되는 그런 배움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 상황에서만 이렇게 차별을 겪었는데 나보다도 더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분들은 나보다도 더 쉽게 그리고 더 많은 상황에서 이런 불합리함과 위협을 경험하지 않을까. 누구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걸로 선택하지 않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며 마무리했습니다.
이후에도 광장에서 배운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광장 수다회를 이어가기로 약속하며 마무리했습니다.
*사진 : 요지경
[수다회_진행안] 달콤한 광장, 나는 왜 광장에 나왔나?
진행 :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사말:
유가족으로서 광장에 선 이태원참사 유족
이야기손님 :
남태령에서 밤샌 사람 (선택받은아이들 내일찾기위원회)
전장연에 연대한 이웃 (민주동덕 재학생연합)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연대자 (멜로디언으로 일짱되기)
노조활동을 하다 광장을 만난 이 (허지희 세종호텔해고자)









[후기] 수다회-“달콤한 광장, 나는 왜 광장에 나왔나?”
윤석열 대통령이 반인권적인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우리의 삶과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윤석열 탄핵과 파면을 외치는 광장에서 민주주의의 다양한 주체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2030여성퀴어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젠더노소 가릴 것이 없는 경이로운 연대와 환대의 모습은 달콤해서, 연대와 환대의 달콤함을 나누고자 바람이 수다회를 열었습니다.
지난 2월 18일 저녁 “달콤한 광장, 나는 왜 광장에 나왔나?”는 주제로 수다회가 이태원참사추모의 집인 별들의집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평일 저녁임에도 60명 정도가 참여했습니다. 광장에 모인 2030여성/퀴어들은 윤석열 퇴진만이 아니라 투쟁하는 농민들, 장애인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고자들에게 연대했습니다. 민주주의 확장이 펼쳐지는 감동을 함께 나누고자 한 수다회였습니다.
본격적인 수다회가 시작되기 전에 광장에서의 감동을 나누는 <나는 00 때문에 광장이 달콤했다>는 인증샷을 했습니다. ‘동지 ’때문에 ‘사람’ 때문에 광장이 달콤했다는 문구도 있었고, ‘다양성과 포용’ 때문에 달콤했다는 사람도 있었다는 문구에서 광장의 환대가 느껴졌습니다.
바람의 상임활동가 명숙의 진행으로 시작된 수다회의 첫 발언은 이태원참사 유가족이신 고 이상은 님의 이모부님과 아버님이 해주셨어요. “이태원참사나 오송참사 등 민주주의의 역행이 내란세력으로 인해서 생긴 문제였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광장에서 만날 수 있었는지모른다”며,“광장에서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느꼈다”고 소회를 나눠주셨어요.
광장으로 나오며
페미니스트 인권운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명숙 활동가처럼 다들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남태령에서 밤샌 ‘선택받은아이들 내일찾기위원회’ 깃발을 들고 다니는 모레 님은 세월호참사, 메르스 이후의 페미니즘 리부트와 백래시를 경험해서 “과거에 나에게 지금 나가지 않는 게 너무 부끄럽겠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며 비상계엄 다음날부터 나왔다고 해주셨습니다. “12월 3일에는 생계에 묶여서 나가지 못했었는데 그게 너무 부끄럽고 뛰쳐나간 분들한테 죄송해서 나가게 된 것 결국 기본적으로는 부끄러움 그리고 떳떳하고 싶은 마음, 나와 나의 동료 시민에게 떳떳하고 싶은 마음으로 뛰쳐나갔다.”
전장연의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로’라는 슬로건으로 지하철선전전에 연대한 동덕여대 재학생 재이님은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오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습니다. 11월부터 동덕여대에서 벌어진 비민주적 행위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탄압하는 학교측의 입장을 대변하며 학생들을 폭도로 몰아가는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나가는 게 맞다, 이게 좀 우리가 나라가 바로 서지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의 학내 상황이 세워질 수 있겠느냐” 그런 말을 하며 나왔는데 “막상 저희가 간 광장은 저희가 예상한 거랑 너무 달랐던 모습이었어요. 위험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민주동덕 깃발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그러다가 전장연 지하철 다이인 행동을 하고 함께 연대하면서 동덕여대까지 행진하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또 살면서 언제 지하철 역사에 누워 보겠어요? 전장면에서 늘 틀어주는 노래가 있거든요.우리는 다 똑같이 사람들인데 이제 우리만 놓고 전차가 떠나가고 민주주의는 물 건너 간다 그런 노래를 듣는데 되게 멜로디는 좋은데 울컥하는 거예요. 정말 당연한 권리인데 이게 지켜지지 않으니까 ”
남태령을 넘어 세종호텔까지
윤석열 구속과 파면을 요구하며 트랙터 등을 몰고 상경 시위에 나선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전봉준 투쟁단’은 12월 21일 밤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에 가로막히자 시민들이 밤에 달려가 경찰을 물러나도록 했다. 추운 동지밤을 고립된 농민들과 함께 한 승리였다. 그날 밤에 있었던 모레 씨는 명숙 활동가가 말한 광장이 연대와 환대의 장소였다는 것에 동의하며 말을 이었다.
“남태령과 같은 혹은 남태령 이후의 경장들에서 제가 느꼈던 건 우리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고립될 게 아니라 되게 혼종적인 상태로 함께 있어야 하는구나라는 걸 남태령이 가르쳐줬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남태령에서 사람들이 모인 것 자체가 그거였잖아요. 고립되어 있고 수가 적으면 경찰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나라도 가서 같이 있어야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다라는 감각이 남태령에서 좀 공유가 많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방식에 함께 함이 오히려 더 안전할 수 있고 고립되려고 하는 마음이 더 위험하거나 폭력에 취약해질 수 있다라는 감각을 저는 정말 체감을 했던 것 같고요.”
그러다 을지로의 한화오션 빌딩 앞에서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비정규노동자들이 천막을 치려다 다쳤다고 해서 “내가 여기서 가버리면 나를 환영해 줬던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고 했습니다. 12월 31일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에서 성중립숙소를 만들며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동지들을 존중해줬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계엄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거통고 농성천막과 세종호텔에서 멜로디언 연주를 하며 연대를 하는 멜로디언 동지는 “ 범성애를 하는데 제 주변에 퀴어가 거의 없었고 제가 제일 특이한 사람이었다. 광장에는 내가 평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양한 퀴어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개념도 듣고 새로운 사랑의 형태 다른 성별도 알게 되며 진짜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이제 다시 계엄 전날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며 광장에서 배운 것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통고 하청노동자들이 천막을 치던 날 근처에서 농성하고 있는 세종호텔 해고자들이 와주어서 밤새 농성장을 지켜주어 연을 이었던 세종호텔지부 허지희 사무장은 광장에 처음 나갈 때는 노조의 투쟁과 비상계엄을 막는 것이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며 세종호텔지부가 끝장투쟁이라고 불리는 고공농성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연대자들의 힘을 보며 “매일의 감동은 사람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 사랑보다 더 큰 응원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생각의 지평이 나를 넘어서서 타인에게까지 가게 되는 그런 배움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 상황에서만 이렇게 차별을 겪었는데 나보다도 더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분들은 나보다도 더 쉽게 그리고 더 많은 상황에서 이런 불합리함과 위협을 경험하지 않을까. 누구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걸로 선택하지 않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며 마무리했습니다.
이후에도 광장에서 배운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광장 수다회를 이어가기로 약속하며 마무리했습니다.
*사진 : 요지경
[수다회_진행안] 달콤한 광장, 나는 왜 광장에 나왔나?
진행 :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사말:
유가족으로서 광장에 선 이태원참사 유족
이야기손님 :
남태령에서 밤샌 사람 (선택받은아이들 내일찾기위원회)
전장연에 연대한 이웃 (민주동덕 재학생연합)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연대자 (멜로디언으로 일짱되기)
노조활동을 하다 광장을 만난 이 (허지희 세종호텔해고자)
일시 : 2025. 2.18(화) 저녁 7시반
장소 : 별들의집(이태원참사추모의 집) 경복궁역
주최 :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