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연대소식] 우리의 조직은 연대입니다 - 전교조 유천초분회의 투쟁 승리 소식

연대소식_ 유천초공대위


우리의 조직은 연대입니다

전교조 유천초분회의 투쟁 승리 소식


고태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운영위원)


끝장투쟁에 들어서다

저항행동 255일, 끝장투쟁 18일. 강원도교육청 앞에서 이어지던 유천초분회 투쟁의 숫자다. 유천초는 지난 해 편파적인 표적감사, 일방적인 혁신학교 지정취소 통보, 일부 교사들에 대한 부당징계를 겪었다. 저항행동을 시작하고 강원도교육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하면서는 민형사고발도 이어졌다. 진보교육감 아래 일어난 비민주적인 일들은 외면받아왔고, 좀처럼 해결 국면을 맞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6월 14일, 민병희 교육감의 임기를 보름 남겨놓고 전교조 유천초분회는 끝장투쟁을 결의했다. 민병희의 결자해지를 요구하며 징계교사 3인은 단식을 시작했고,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피켓팅, 점심 동조단식이 이어졌다. 전교조 내에서도 이 문제를 노조가 나서 해결할 수 있도록 역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성명으로 이어졌고, 노동자시민선언이 조직되어 강원도교육청에 전달되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이 속해있는 유천초공대위와 유천초분회의 매일 교섭요구서 전달도 이어졌다. 그러나 한 번도 문이 열리지 않았고, 교섭요구서는 바닥을 나뒹굴 뿐이었다.


유천초분회가 전달하려던 요구안은 5가지였다. 먼저, 모든 사태를 시작한 민 교육감의 사과가 요구되었다. 이미 표적으로 지목된 몇몇 사람들에 대한 비인권적 감사, 그 이후 이어진 일방적 혁신학교 지정취소의 통보, 부당한 징계, 농성 과정에 발생한 폭력 사안들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 포괄적 사과를 원했다. 그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혁신학교 지정취소 철회와 부당징계에 대한 취소도 내용에 포함되었다. 특히 부당징계로 인한 징계 교사들의 강제전보도 풀어야 할 문제였다. 또한 이 모든 시작이 혁신학교를 정책으로 실행하면서 그 모든 책임을 학교업무 정상화라는 이름하에 평교사들의 몫으로 두는 한계에 있기 때문에, 학교 혁신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다. 특히 혁신학교 지정취소 이후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학교 현장에 대한 회복을 위한 행정지도나 컨설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내용들은 저항행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내용이었지만, 오히려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점차 상황이 악화되어 온 부분이 있었다. 따라서 이 내용은 여전히 강원도교육청이 결자해지 할 문제로 남았다.


유천초분회와 공대위는 결자해지하라 외쳤지만 농성을 하는 내내 강원도교육청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닫힌 문 안은 고요했다. 교섭요구서 종이를 받으러 내려오는 이가 없었다. 교섭요구안을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을 꾀하려 노력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교섭요구서는 문틈 사이로 넣어져 오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혔다. 유천초분회는 200일 넘게 싸워오며 단 한 번 교육감과의 면담이 있었다. 당시 모르쇠로 일관하여 대화의 진전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병희 교육감과 만나 합의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전교조 활동을 함께 했던 동지로서의 기대일 수 있었다. 임기 중 그의 손으로 세워진 혁신학교 정책들이 그대로 무너지지 않도록, 그가 내민 손을 붙잡길 바랐다. 그러나 강원도교육청은 유천초의 대응에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전교조 강원지부 혹은 외부 기자에게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할 뿐이었다.


전교조 유천초분회, 드디어 강원도교육청과 만나다

그러던 중 7월 1일 갑작스레 유천초분회가 강원도교육청과의 합의가 진행되었다. 합의 한 주 전, 춘천의 전교조 출신 교육계 인사가 당시 인수위 체제였던 교육청에 유천초 문제 해결을 위한 면담을 다시 한 번 요구했다. 민병희 교육감의 퇴임으로 해결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20일 충돌 이후 단식자들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수위에서든, 새 교육감 부임 후든 의미 있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은 인수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분회에서도 다시 한 번 강원지부에 신임 교육감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두 요구가 만나, 드디어 구체적인 면담 일정이 잡혔다.


신임 교육감의 취임인 7월이면 적어도 단식 18일 차였다. 15일을 겨우 넘긴 채, 교사 윤용숙의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이송되자 남은 단식자 두 사람의 건강과 심리적 상황이 좋지 못했다. 6월 30일에도 여러 차례 위기 신호가 있었던 터라 단식자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더 이상 끌면 안된다는 간절함도 컸다. 그러던 중 7월 1일이 밝았다. 신임 신경호 교육감은 출근 길, 가던 걸음을 멈춰 단식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교섭요구안을 전달하며 비서실에서 내려와 받으라는 말에 비서실에서 담당자가 내려와 교섭요구안을 받고 인사를 나누고 올라갔다. 점심을 마치고 들어오는 신경호 교육감은 다시 농성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원래 오후에 30분 정도 예정되었던 면담은 오늘 내 합의를 보겠다는 의지로 이야기가 길어졌다. 세 번의 논의, 세 번의 휴정을 거쳐 7시 반이 되어서 결국 분회는 합의서를 손에 쥐고 서로를 얼싸 안았다.


협의에서 다루어진 내용은 그간 분회가 요구해온 다섯 가지 외에도 끝장투쟁을 하면서 유천초 교사들이 연가를 신청한 게 학교장에 의해 승인되지 않고 무단결근 처리되었던 것에 대한 해결도 포함되었다. 협의를 하러 들어간 대표단은 분회와 공대위가 그간 논의해온 것들을 토대로 이야기 나눴다. 물론 투쟁요구안 전체가 구체적 합의사항으로 점철되긴 어려웠다. 이미 민병희 교육감이 퇴임한 시기 진행되는 협의라는 점이나 민병희 교육감 시절 폐기된 혁신학교 정책을 신임 교육감이 다시 시행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의를 끝내야 한다는 해결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


우리의 조직은 연대입니다

분회는 여러 의미로 전교조 내 분회 투쟁으로서 유례없는 결과를 얻어냈다. 도교육청이 마침내 응답하여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고 이에 대한 유의미한 협의가 진행된 자체도 그렇지만, 끝장투쟁으로 분회와 함께 연대하는 시민들이 질기게 싸워 얻어낸 결과라는 점이 뜻 깊었다. 유천초등학교 투쟁은 교육청의 일방향적인 결정과 통보, 이를 외면하려는 이들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유천초 교사들이 투쟁을 시작하고 만난 이들은 유천초 투쟁이 학교 민주주의 운동으로서, 부당한 처우에 저항하는 노동 운동으로서, 연대하는 시민들의 운동으로서 의미하는 바를 깨닫게 했다.


유천초분회는 농성 투쟁을 시작하면서 ‘구멍’이라는 실천단을 만들었다. 불평등이 강화되고 되물림 되는 자본주의 세상에 구멍을 뚫겠다는 의미로 지은 실천단은 투쟁현장에서 배우는 배움실천단이면서 어디서나 필요하다면 달려가 노래하고 춤추는 노래패이자 몸짓패로 거듭났다. 몸짓패는 유천초 수요집회와 희망대행진에서 공연을 하면서도, 연대하러 간 다른 농성장에서도 춤과 노래로 기꺼이 함께했다. 투쟁 현장을 돌아다니는 징계 교사 3인의 이름인 김나혜, 남정아, 윤용숙에서 온 김남윤이라는 별칭도 생겼다. 분회와 김남윤, 몸짓패 구멍은 따로 또 같이 세상을 배우고 연결 지으러 쉼 없이 강원도교육청 밖의 활동을 이어갔다.


분회원들이 투쟁하며 연대한 이들과의 시간은 분회원들의 내면적 변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변화들도 투쟁의 성과라면, 분명 유천초 투쟁은 분회 조합원들에게 큰 성과를 준 투쟁일 것이다. 연대를 하며 조합원들은 강고한 투쟁 의지에 더욱 불을 지피게 되었다. 정규직 교사로서의 삶에서 체감하지 못했던 노동운동, 차별철폐의 운동들이 삶에 와 닿기 시작했다. 그동안 외쳐왔던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가 스스로에 대한 느낌이 아닌 표출이 아닌가 하는 반성, 절절함에 대한 간절함 없는 연대를 해온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의 시간은 유천초분회의 투쟁 경험과 소감을 통하여 분회원들 사이에 공고히 쌓이고 있는 의식이다.


유천초 투쟁을 통하여 연결된 이들 또한 이 투쟁의 성과다. 유천초분회가 열심히 뛰어다닌 만큼, 유천초 투쟁은 이례 없는 연대의 결과를 체감했다. 4월에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춘천에 모여 팔호광장부터 강원도교육청까지 함께 걸었고, 5월에는 200여 명의 사람들이 유천초가 있는 강릉에서 거리행진을 했다. 6월 끝장투쟁을 하는 동안 단식자들을 오러 오간 이들 뿐만 아니라, 결의대회에서 또 한번 100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걷고 구호를 외치며 강원도교육청에 문제를 해결하라 요구했다. 마무리 발언에서 나온 이야기처럼, 유천초 투쟁의 ‘조직’은 연대였다.


이제 유천초투쟁은 강원도교육청과의 합의라는 하나의 산을 넘었다. 다음 산은, 합의 이행을 통해 이 결과가 얼마나 지켜질 것인가에 달렸고, 또 하나는 바뀌어진 우리의 삶에 달렸을 것이다. 본 고는 유천초공대위로 본 투쟁에 함께 마음모아 주었던 바람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아직 자세히 전해듣지 못한 이들께 전하고자 한다. 또한 투쟁을 하며 새롭게 바람님들이 되신 강원지역 시민들과 유천초 교육노동자들을 환영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우리를 소개하는 글을 마친다. 모두 고맙습니다.


강원도행정폭력 규탄 행진을 마치고 강릉 월화거리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