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명숙 칼럼] 미국에 국보법 7조가 있었다면, 트와이스 노래 부른 사람들은?

[명숙 칼럼] 미국에 국보법 7조가 있었다면, 트와이스 노래 부른 사람들은?

올해 국보법 7조 폐지하고, 전체 폐지의 길로 가는 첫 삽 떠야

https://www.vop.co.kr/A00001527556.html (2020-11-23)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근 한 달동안 전 세계의 관심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가능할지 여부에 모아졌다. 미국 대선에 대한 관심은 단지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적 경제정책, 여성혐오적 태도나 극우적 성향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통령인 트럼프가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가짜정보를 퍼뜨리는가 하면, 기후위기에 대한 세계적 합의인 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이며 국가의 의무와 세계 질서를 뒤흔들어놓아서 더 그런 것 같다. 한국의 경우엔 미 대선의 향방이 남북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미 대선 소식이 실시간으로 방송에 보도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걸그룹 트와이스(TWICE)의 노래 ‘필 스페셜’(feel special)이 안티 트럼프 노래로 주목을 받았다. 바이든 후보가 그간 민주당 후보의 승리가 쉽지 않았던 조지아주에서 역전으로 승리하자, 한 미국 네티즌이 이를 자축하기 위해 30여초짜리 영상을 만들어 트위터에 올렸는데 배경음악이 ‘필 스페셜’이었다. 이 영상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트와이스가 주목받게 됐다. 또 바이든 후보가 승리하자 유명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트와이스의 노래를 틀고 춤을 추는 영상이 퍼지며 더 유명해졌다. 그렇다고 노랫말에 트럼프를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You make me feel special/세상이 아무리 날 주저앉혀도/아프고 아픈 말들이 날 찔러도/네가 있어 난 다시 웃어”

-트와이스, ‘필 스페셜’ 가사 중에서


미국에 한국처럼 국가보안법 7조가 있었다면?

이런 소식을 접하니 지난 5월 ‘혁명동지가’ 관련 대법원 판결이 떠올라 씁쓸하다. 2013년 통합진보당 대변인 등은 선거출마결의대회에서 ‘혁명동지가’를 불렀는데, 그것이 국가보안법 7조(찬양, 고무)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혁명동지가’는 북한에서 만든 노래도 아니다. 팩트조차 확인하지 않은 일부 보수 언론은 ‘북한군가’로 소개하기도 했으나, 이 노래는 한국의 민중가요 가수 백자가 만든 노래다. 그는 학생시절인 1991년, 일제 치하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리며 함께하는 동료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곡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가사에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제 치하에 만주에서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반추하며 열심히 활동하자는 것이다.


“동만주를 내달리며 시린 장벽을 넘어/진군하는 전사들의 붉은 발자국 잊지 못해/돌아보면 부끄러운 내 삶을 그들에 비기랴마는/뜨거웁게 부둥킨 동지 혁명의 별은 찬란해/몰아치는 미제에 맞서 분노의 심장을 달궈/변치말자 다진 맹세 너는 조국 나는 청년”

- 백자, 혁명동지가 가사 중에서”


이 가사 중 정치적인 내용이라면 ‘미국에 대한 분노’ 정도다. 미국에 대한 비판은 일본에 대한 반대처럼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입장으로 다양할 수 있는 것인데, 이걸 이적표현물이라고 하는 것은 남사스럽다.

원곡자인 백자는 “미국의 패권,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치 양식에 대하여 비판하는 내용으로서 작곡 당시 미군 범죄가 회자되었던 점, 미국의 걸프전이나 패권주의 등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자 가사로 쓴 것이며 북한의 주장을 무조건 따라 담은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창작의 자유, 예술의 자유 내에서 충분히 가사 내용으로 담을 수 있는 것”이란 내용의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5월 대법원은 원곡자인 가수 백자의 의견도 묵살하고 국보법의 ‘고무, 찬양죄’에 해당된다며 관련자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만약 트럼프 집권 하 미국에 국보법과 비슷한 법이 있었다면, ‘필 스페셜’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국보법 7조

원곡인 ‘혁명동지가’가 이적표현물이 아닌데,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이적 표현을 한 것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적’을 이롭게 한다는 말도 매우 자의적이다. 그렇다면 누가 적인 걸까? 전쟁시기도 아닌 평화 시에 적에 대한 기준은 매우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남북평화를 추구하는 마당에 북한을 찬양(칭찬)하는 것을 처벌하는 법이 있는 것도 비상식적이고 퇴행적이다.

게다가 북한을 찬양하지 않아도 ‘동조’하면 처벌할 수 있게 한 법이 국가보안법(국보법) 7조다. 국보법 해석에 따르면, 북한은 역사를 공유한 이웃이 아니라 ‘반국가단체’다. 정말 분단시대가 낳은 악법이라 할 수 있다.

국보법 제7조(찬양·고무등)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 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 변란을 선전· 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돼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예를 들어 내가 일본을 비판하는 글을 썼는데 그 내용이 북한 공식성명과 비슷하다면 북한을 찬양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즉 찬양고무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법이 국보법7조다.

이는 함부로 기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헌법에서 정한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과 법치주의의 기본인 죄형법정주의에도 어긋나는 조항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된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국정원이 마음만 먹으면 국보법7조 위반으로 충분히 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방송금지 뿐 아니라 출연 배우들도 기소될 수 있다. 드라마 속 북한 군인들 중 비중 있는 인물들을 정감 있는 사람들로 묘사했으니, 그것을 두고 북한을 찬양· 고무했다고 해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 국보법 7조 5항 이적표현물과 관련된 우스운 일화가 많았다. 국보법 7조 5항에는 “제1항ㆍ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ㆍ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ㆍ수입ㆍ복사ㆍ소지ㆍ운반ㆍ반포ㆍ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 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고 돼 있다. 이 때문에 정식으로 출판사에서 출판된 도서를 ‘이적표현물’로 선정하거나, 그런 책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일이 수두룩했다.

그중 하나가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를 막스 베버(Max Weber) 와 헷갈려, 막스 베버 책을 소지한 학생을 국보법 위반으로 체포하려 한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이론가이고 막스 베버는 기독교적 노동윤리를 분석하며 마르크스의 자본주의론을 비판한 인물인데도, 내용도 제목도 보지 않고 무조건 잡아들이려 하다보니 생긴 일이다. 단지 작가 이름의 번역어가 ‘막스’로 비슷해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민주화운동에 동참한 학생운동에 대한 탄압과 사상 검열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군사정권이 물러간 후에도 비슷한 일은 반복됐다. 2014년에는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러시아보고서를 설명한 인터넷 방송 내용이 이적표현이라고 기소한 사건도 있었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많은 정보가 오가는 세상에서 마음대로 이적표현이라고 딱지를 걸 수 있는 법이 국가보안법이다. 21세기에 이러한 방식으로 사상검열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보법7조가 민주주의국가에서 존재하는 것 자체가 반시대적 반민주적이다.


유엔인권기구가 수차례 폐지 권고한 국보법

이러한 이유로 국제인권기구들에서는 수차례 국보법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표현의 자유 침해와 정치적 권리 침해가 많다보니 국보법 폐지 권고 뿐 아니라, 국보법 7조(찬양, 고무죄) 폐지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폐지하라는 권고도 많았다.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위원회(약칭 유엔자유권위원회)’는 1992년부터 2015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국가보안법 7조의 찬양 고무죄는 군사정권 같은 권위주의 정부가 정치적 반대자나 국민들의 정책 비판에 족쇄를 거는 데 사용돼 왔다. 정부 비판을 봉쇄하고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민주적 법이다.

심지어 국보법은 학문·사상의 자유만이 아니라 예술· 표현의 자유도 침해한다.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간 신학철 화백의 그림 ‘모내기’(1987년작)도 1989년엔 국보법 상 이적표현물이라고 압류되고 작가도 구속됐다. ‘모내기’는 통일을 염원한 작품으로 농부들이 핵무기, 탱크,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나카소네 전 일본총리, 코카콜라와 양담배, 매트헌터와 람보, 그리고 38선의 철조망 등 뒤엉킨 ‘쓰레기’들을 써레질로 긁어모으는 모습이 아래에, 평화롭게 농사를 짓는 모습은 위에 그려있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 그림을 아래는 남한이고 위에 평화로운 부분은 북한이니 북한을 찬양했다고 해석해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1999년 유엔인권위원회(지금의 자유권규약위원회)는 국보법의 단계적 폐지를 권고했다. 뒤이어 2004년 3월엔 ‘모내기’ 사건이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유죄 판결에 대한 금전보상, 유죄 판결 무효화와 작품 원상 반환을 권고했다. 앞서 2001년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도 이 사건과 관련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2008년 5월 유엔인권이사회의 ‘유엔국가별 인권상황정례검토’(UPR)심의에서도 국보법 폐지와 개정에 대한 권고가 여러 번 나왔다. 필자가 당시 심의위원에게 ‘모내기’ 그림을 보여주며 이 작품을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했고 작품을 압류했다고 하자 매우 놀라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얼마 전 홍콩에 대해 중국이 ‘한국 국가보안법 같은 국가안전수호법’을 제정해 전 세계의 언론들이 중국을 비판한 바 있다. 한국의 언론도 비슷했다. 이제야말로 한국의 국보법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대한민국에 구시대 악법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 지난달 22일 21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국보법 7조 폐지안(이규민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됐다. 2004년처럼 국보법 폐지 농성이 있지는 않지만, 박근혜 탄핵 이후 집권한 정당이 과반수 국회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야 말로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악법이라며 폐지하고자 했던 국보법을 폐지해야 할 때다.

12월 1일이면 국보법이 제정된 지 72년 되는 해이다. 국보법은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 만든 치안유지법을 모체로 한 법으로, 이승만 정권이 여순항쟁 이후 장기집권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인권단체들은 국보법이 제정된 12월 1일을 국가보안법 폐지의 날로 기념하며, 국보법 폐지의 필요성을 오랫동안 알려왔다. 올해 꼭 국보법 7조가 폐지되어, 법 전체 폐지로 가는 길의 첫 삽을 뜨는 해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