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명숙 칼럼] 노동자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국가

[명숙 칼럼] 노동자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국가

민사합의를 들먹이는 아리셀 참사 2심 재판부가 왜곡한 피해자의 권리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2026-04-2



유가족들이 주저앉아 땅을 치고 통곡한다. 옆에 있던 활동가들, 변호사들, 종교인들이 그들을 끌어안고 함께 운다. 어제(4월 22일), 2024년 6월에 발생한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에 대한 2심 재판 결과 때문이었다.


2심 재판부인 수원고등법원 형사1부(재판장 신현일)는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순관 대표에게 1심의 징역 15년의 4분의 1에 불과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아들인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에게도 원심 15년을 파기하고 징역 7년에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23명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고작 4년이라니, 생명의 무게도, 처벌의 무게도 너무나 가볍다. 그 장면을 보던 나도 울 수밖에 없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하게 하는 재판부의 궤변

안전의무가 있는 경영진의 책임을 물어 안전 조치를 다하게 만들려는 목표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그런데 이렇게 가벼운 처벌이라면 어떤 경영진이 안전대책을 만들겠는가.


더구나 비상구에 대한 2심 재판부의 논리는 궤변 수준을 넘는다. 안전보건규칙 제17조에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과 건축물 자체에 비상구를 설치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나,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없는 공장 3동 2층에는 비상구를 설치할 의무가 없다는 황당한 논리를 폈다. 위험물질을 쓰지 않는 아파트에서도 아래층이나 옆 동에서 불이 나면 피할 수 있도록 비상구를 마련하는데, 이런 궤변을 재판부가 한 것이다. 아무 충격이 없더라도 보관 중에도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 리튬전지다. 그래서 적재 자체도 위험하기에 보관도 안전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위험 작업장이 아니라는 말을 어떻게 재판부가 할 수 있는가.



심지어 참사가 발생하기 이틀 전인 6월 22일, 공장 2동에서 리튬전지 폭발 사고가 있었음에도 화재 진압 후 공장은 소방 당국에 이를 알리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폭발이 일어난 리튬전지와 같은 시기에 생산한 제품을 공장 3동 2층으로 옮겨 다른 전지와 함께 적재했고, 그 후 적재된 리튬전지 완제품에서 폭발이 발생해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이 상황만 고려해도 적재의 위험성은 알 수 있는데 궤변을 폈다.


또한 재판부는 통로가 막혀 죽을 수밖에 없었던 21명의 노동자가 있었음에도, 산업안전보건규칙에 ‘비상통로의 개념 정의’가 분명하지 않다며 박순관의 책임을 덜어내려 했다. 재판부가 감형이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최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덜어낼 방안을 모색한 것이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비상통로의 개념 정의가 없어도 비상통로에 물건을 쌓아놓지 않아야 하고 출입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이다.


민사합의를 들먹인 재판부는 국제인권기준이 명시한 피해자의 권리를 상기하라

또한 2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민사 합의한 것을 들어 형사재판의 감형 근거로 사용했다. 그러나 민사와 형사 합의는 다른 것이다. 게다가 “합의를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하면” 충분한 피해 회복을 어렵게 한다는 궤변을 했다. 박순관 대표는 충분한 피해 회복도 하지 않은 자인데, 판사가 가해자에게 이입되어 사실과 다른 근거로 마치 ‘피해자를 위한 판결이 감형’인 양 결론 내린 것은 피해 유가족들에 대한 모욕이다. 


피해보상과 형사 처벌 중 양자택일을 하라는 것은 국제인권기준에도 어긋난다. 이런 식의 구조가 반복된다면 기업주 처벌은 과거처럼 어려워지고, 곤궁에 처하는 것은 유가족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주와 노동자라는 경제력이 다른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항상 딜레마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국제인권기준에는 피해자에게 두 권리가 모두 보장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왜 사법부가 피해 가족의 권리를 제한하는가.

국제인권기준에는 피해자에게 진실, 정의(처벌), 피해 보상 및 배상, 재발 방지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과 여러 국가범죄를 겪으며 국제사회는 ‘불처벌이 국가폭력을 반복시킨다’는 인식 아래 불처벌에 맞선 원칙을 세웠다. 2005년 유엔 총회는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 및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 피해자의 구제 및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 원칙과 지침”(A/RES/60/147)(이하 ‘기본 원칙’)을 채택했다.

민사합의를 들먹인 재판부는 국제인권기준이 명시한 피해자의 권리를 상기해야 할 것이다. 네 가지 권리는 각각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지, 다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또 다른 권리를 유보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민사합의는 피해 보상에 해당하는 것이다. 보상이 처벌로서 정의를 실현할 권리와 대체되는 것이 아니다. 민사합의를 이유로 형사처벌을 가볍게 하는 구조는 피해 가족과 고인을 모욕하는 일이다. 또한 피해자들을 조력한 법률 조력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다.

세계 산재사망노동자의 날에 듣는 망언

4월 28일은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1993년 5월 10일 태국 인형공장에서 탈출구가 없어 188명이 사망한 참사를 계기로, 4월 2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추모 촛불집회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똑같이 비상구가 없어 죽어간 아리셀 참사 2심 재판에서 유가족들이 판사의 망언을 듣다니 참담하다.


국제인권기준도 모르는 판사들이 쓴 결정문이라는 칼날에 상처 입은 이들을 위로하며, 2심 판사에게 말하고 싶다. 인권기준도 무시하고 사실관계도 뭉개는 판사는 자격이 없다. 당신이 설 곳은 법정이 아니니 떠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