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장애인노동과 노동의 전환 ②] 나의 몸이 자본주의를 거부한다

[장애인노동과 노동의 전환 ②] 나의 몸이 자본주의를 거부한다

정창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 간사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302 (2021.10.07)


“생산성도 떨어지는 장애인들 고용해 줘서 훈련해 주는 것도 감지덕지 아니냐.”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사용자위원 중 한 명은 노동자위원측의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폐지 요구에 이렇게 답했다. 노동자위원들은 물론 장애인운동 활동가들도 즉각 반발하긴 했지만, 사실 이 주장은 꽤 솔직한 것이기도 하다. ‘장애’란 용어가 애초 자본주의 체제에서 ‘임금노동이 불가능한 신체’를 분류하기 위해 발명되고 보편화됐다는 데까지 소급해 갈 것도 없다. ‘장애인은 생산성이 낮다’는 전제는 오늘날 장애인 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중 하나이며,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은 솔직해져 보자. 장애인운동·노동운동 진영은 그동안 이 전제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웠던가.

이 인식이 ‘정상 신체’에 대한 효율적 착취에 기반을 둔 현 생산조건 속에서 재생산돼 온 결과는 명확했다. 한국 장애인의 비경제활동인구 비율은 63%에 달한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다. 심지어 한국 장애인 예산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한국 장애인들 상당수는 도무지 빈곤 상태에서 벗어날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취업한 장애인이라면 상황이 좀 나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들은 끊임없이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으며, 임금은 비장애인 노동자의 75% 수준이다. 심지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37만원에 불과하며, 장애인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60%에 달하기도 한다. 이는 전체 인구 비정규직 비율 36%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한편 장애인고용 정책 담당자들은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들을 ‘보호 고용’의 울타리에 가둬 두고서, 그것이 장애인 노동 문제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해 왔다. 이 영역에는 ‘재활’이라는 이름이 따라붙었는데, 재활은 그것의 ‘따뜻한(?)’ 의도와 별개로 장애인들의 현 상태를 ‘비정상’으로 낙인찍는다. 오직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자만이 ‘정상적 노동력’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극복에 실패한 자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일 뿐이고, 그래서 노동자성을 부정당한 채 영원히 ‘훈련생’으로 남겨질 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장애인도 충분히 생산성을 가지고 있다”며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돌리면 안 보였던 능력이 보입니다”(장애인고용공단 2021년 인쇄매체디자인 수상작) 따위의 말로 자본의 시혜적 고용을 촉구하는 것은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