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바람오세훈의 '1분 지체 불가', 혐오의 물꼬 터주었다

오세훈의 '1분 지체 불가', 혐오의 물꼬 터주었다

[인권의 바람] 전장연의 불복종 저항행동에서 사유할 것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012616004057878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정의에 관한 이 문구는 지방정부의 장에 의해 공개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뭉개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3년 첫날, 방송에 출연하여 장애인들의 지하철 승하차 시위에 대한 법원의 1차 조정안(2022.12.29.)이 "비합리적"이라며 지하철 운행시간 5분 연착만이 아니라 단 1분도 지체시킬 수 없다고 했다.


한국 자본주의 등장 이래 장애인의 인권보장을 위한 국가정책과 예산은 주로 후순위에 놓였다. 헌법 10조와 11조에 명시된 존엄과 평등, 인권은 장애인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 시장은 2023년까지 지연된 장애인의 인권과 정의는 더 지연될 수 있어도 '지하철 운행시간'이 지연될 수는 없다고 했다. 정말로 지연 없는 지하철운행은 우리의 삶을 존엄하게 하는가. 


장애인의 지하철 승하차 시위가 보여주는 것들 


장애인의 지하철 승하차 시위가 우리 사회에 던진 것들은 무엇인가. 단지 장애인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만이 아니었다. 작년부터 시작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지하철 승하차 시위는 불가피하게 지하철 운행시간을 지연시킨다. 어떤 폭력도 없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여러 명이 지하철에 타고 이동하는 것일 뿐이다. 당연히 이들의 승하차 시간이 오래 걸리니 지하철 운행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픈 사람, 유아차를 끌고 가는 사람, 아동과 노인이 여러 명 지하철을 타려할 때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린다. 전장연의 지하철행동은 비장애인 중심의 국가에 저항하는 행동, 불복종 저항행동이다. 


전장연의 시위로 인해 지하철로 출근하는 시민들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전장연의 시위가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며, 출근시간대 지하철행동을 비판하기도 한다. 개인에게 체감되는 불편 수위가 큰 출근시간대에 전장연이 시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자본주의적 속도를 멈추기에 적당한 때는 우리가 직장으로, 공장으로 사무실로 출근하는 시간이어서가 아닐까. 우리는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을 보며 사유할 기회를 얻는다. 만약 사유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일정한 속도로 생활하고 일하면서 많은 이윤을 내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주변으로 밀려난 장애인들이 있었다. 그 결과 장애인은 집이나 시설에 붙들려 있어야 했다. 


물론 경찰과 지하철직원들은 출근시간대가 아닌 시간에 일어나는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도 막아섰다. 그들도 전장연의 불복종 저항행동의 본질이 자본주의적 생활흐름, 이윤 중심의 속도에 대한 싸움임을 인식한 것일까.


전장연 지하철행동의 또 다른 효과는 가시화다. 이번 시위로 전장연은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에서 다른 몸뚱이를 갖고 있는 장애인의 존재를 드러냈다. 서로 다른 몸을 갖고 있는 사회구성원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뚜렷하게 보여줬다. 숨겨야 할 이유는 없다. 다름은 부끄러움이 아니고 다름을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므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공존하는 사회다. 장애인이 없는 듯이 보였던 출근길 아침은 순식간에 장애인의 존재를 드러냈다. 또한 그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인권을 자신의 온몸으로 외치는 인권의 주체임을 보여줬다. "동정은 집어치워"라는 전장연의 구호는 자신들도 사회구성원임을 분명히 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사유를 가로막는 것도 바로 속도다. 빨리 끝내라는, 빨리 생산의 결과물을 내라는,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명령이다.)


물론 사람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대체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이 체제 전체를 멈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속도, 공존보다는 주류의 이기적 성과를 칭송하는 흐름을 멈칫하게는 했다. 그렇게 체감된 불편함은 우리로 하여금 사회적 소수자인 장애인의 처지와 외침에 귀 기울일 기회를 줬다. 아니, 귀를 기울이지 않은 이에게도 장애인의 지하철 행동은 장애인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보여주며, 체제의 속성을 노골적으로 폭로했다.


오 시장 1분 지체 불가 발언의 문제점 


그런 점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장인 오세훈 서울시장의 '1분 지체 불가' 발언은 그동안 쌓아놓은 인권의 상식을 뒤로 돌리는 심각한 것이다. 먼저 그 발언은 대중교통의 목적에서 공공성을 삭제했다.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은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공성은 논의에서 사라졌다. 오 시장 발언은 오직 지하철 운행시간만을 대중교통의 의무로 둔갑시켰다. 물론 그 바탕에는 지하철 속도를 준수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출근 시간을 지켜 자본의 생산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는 뜻이 깔려있을 것이다. 


둘째, 오 시장 발언은 지방정부의 역할과 의무에서 '다양성과 공공성, 인권'이라는 사회적 가치 지향을 삭제했다. 오 시장은 비장애인만을 위한 대중교통, 비장애인만을 위한 서울시 정책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다름없다. 오 시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하는 다양성, 누구나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목소리를 차단당한 소수자들이 행하는 집회와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전장연의 시위는 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위한 예산 마련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된 지하철행동임에도 오 시장은 장애인 권리보장 예산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지 않았다. 사회구성원이기도 한 장애인의 시민권 보장이 더는 지방정부의 의무가 아니라고 공개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장애인의 시민권은 공식적으로 부정됐다. 


셋째, '1분 지체 불가' 발언은 고위공직자의 발언이기에 장애인혐오와 차별 발언에 더욱 힘을 실었다. 오 시장이 대놓고 전장연을 공격하고 법원의 조정을 거부했는데 다른 이야 오죽하겠는가. 오 시장은 일반 시민들이 장애인 차별 발언을 하도록 물꼬를 터준 셈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1년간 열차운행 지연으로 인해 6억 원 정도를 손해 봤다며 전장연을 대상으로 민·형사 대응을 모두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 후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대응 정도는 강경하게 바뀌었다. 해당 발언 다음 날인 1월 2일 실제 서울지하철 4호선은 전장연이 승하차 시위를 하는 삼각지역(대통령집무실 근처)을 무정차운행했다. 삼각지역장을 비롯한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은 전장연 지하철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시에 업무 실적을 보고해야 한다. 서울교통공사의 예산 책정도 서울시가 하는 만큼 공사 측은 서울시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오 시장의 발언은 직원들에게 강경 대응을 직접 지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하철 무정차는 장애인들을 지하철에 탑승할 수 있는 사람으로도 보지 않는 조치이다. 장애인이동권만이 아니라 전장연의 장애인 권리예산 확보를 촉구하는 목소리, 불복종저항행동을 무력화하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 침해이며, 노골적인 시민권 부정이다. 


헌법상 권리가 비장애인만의 권리라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그들이 책정하는 정책과 예산은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된다. 지하철만 해도 그렇다. 승강기가 이전에 비해 많이 만들어졌으나 여전히 승강기의 위치나 크기 등은 휠체어이용 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갈라치기가 아니라 전장연의 물음에 응답할 때 


전장연은 사태 해결을 위해 서울시장과의 대화를 요구했지만 오 시장은 거부했다. 단독으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장애인단체와 함께 만나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오는 2월 2일 전장연과 단독면담을 하기로 결정했다. 편집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기 했던 것처럼 전장연과 다른 장애인단체를 분리하려는 것이다. 의제가 있고 그로 인해 전장연이 지하철행동을 한 만큼 서울시가 해당 단체와 단독면담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시는 그렇게 할 수 없겠다며 전장연의 제안을 거부했다. 해결의 의지는 보이지 않고 불법이라는 낙인찍기에 급급했다. 


국회와 기획재정부는 전장연이 제시한 예산 증액분 1조3044억 원의 0.8%에 불과한 106억 원만을 증액했을 뿐이다. 중앙정부의 예산이 축소됐는데 서울시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전장연과 만나 장애인 권리예산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 테이블과 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 누구도 뒤에 남겨놓지 않는다는 유엔인권기구에서도 내건 주요한 인권의 구호다. 서울시는 이제라도 전장연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전장연이 우리에게 던진 물음과 우리를 멈춰 세워 사유하게 한 사회적 가치에 답해야 한다. 장애인은 시민이 아니냐는 물음에 답하고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공존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존엄할 수 없다는 가치를 새겨야 한다. 비장애인만 잘 사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고 모욕하는 일이 아닌가.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에 지지와 응원으로 화답해야 한다. 1분도 지연되어서 안 되는 것은 인권과 정의라고 함께 외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