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바람여가부 폐지라는 '꼼수'는 '악수'가 될 것

여가부 폐지라는 '꼼수'는 '악수'가 될 것

[인권의 바람] 성평등을 향한 저항의 바람은 거세어진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101317594844575


"거기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맞지요?" 


아침에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중년의 여성이라고 하는 그녀는 전날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여가부 폐지 저지공동행동이 주최한 여가부 폐지 시도 규탄 기자회견 보도를 보고 연락했다고 말했다. 순간 나는 긴장했다. 혹여 반대하는 항의나 훈계의 내용은 아닐까! 


우려와 달리 그녀는 발언을 듣고 이게 맞다 싶어 전화했다고 했다. 자신이 예전에 일한 직장에서 여성들만 출입할 때 지문확인 등의 절차를 거쳤다며, 일상적으로 남성 직원보다 여성들이 하대 받았다는 경험을 말했다. 그러면서 이 나이 되도록 여자라서 차별을 겪었는데, 이게 구조적 차별이 아니고 뭐냐며, 여가부 장관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열심히 막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제 정말 많은 여성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구나!


성평등정책 전담기구 없이 성평등 기능은 강화할 거라는 궤변 


성차별과 성폭력은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여성에게 체감되는 현실이다. 그러니 김현숙 여가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는 근거도 대지 않은 채 '여가부는 폐지되지만 기능은 강화될 것'이라고 한다. 논리적 근거도, 현실적 근거도 없이, 여가부가 폐지돼도 해오던 기능은 강화될 것이라고 답하는 것은 당장의 비판을 피하기 위한 임기응변식 면피용 답변일 뿐이다.


여가부를 폐지하고 복지부에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설치하는 정부조직개편안을 공식 발표한 후에도 이 같은 태도는 여전했다. 10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에 "여가부 폐지는 여성, 가족, 아동,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더 강화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성평등 정책을 기획하고 총괄하는 부서가 사라지는데 여성 인권 보호 기능이 강화될 리는 만무하다. 지금도 여가부 홈페이지에는 설립목적과 활동으로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및 여성의 권익증진' 등 4가지 방향에서의 활동내용이 명시돼 있다. 다른 부처 밑의 기구로 가는데 법령 제·개정, 정책 수립, 예산 편성 등 총체적인 성평등 추진사업을 기획하기는 어렵다. 


알려졌듯이 현재 여가부는 다른 부처에 비해 예산도 인력도 많지 않은 부처다. 여가부 예산은 2022년 정부 예산 604조4000억 원의 0.23%인 1조4000억 원에 그친다. (복지부는 97조4000억 원) 이마저도 다른 부처에 속하면 독립적인 성평등 정책을 수립할 수 없다. 게다가 이걸 여러 기관으로 흩어놓겠단다. 아무리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장을 국무회의에 차관급으로 배석시킨다고 하더라도 위상이 낮아지고 기능이 분산된 기관이 독립적이고 총체적인 성평등 정책을 수립할 수는 없다. 더는 국무회의에서 국가적인 성평등 정책과 법안이 논의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성평등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성평등이 아니라 출산하는 몸으로만 취급하는 부서


더구나 복지부 산하로 만들겠다는 부서 이름이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다. 여성을 출산하는 몸으로만 취급하겠다는 것을 선포하듯이 '인구'가 맨 앞에 들어갔다. 여성을 저출생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인구' 다음으로 나온 것이 '가족'이다. 여성을 독립적이고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 보지 않고 가족을 위한 존재로만 바라보는 태도가 명칭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동안 여성운동을 비롯한 인권운동진영에서는 여가부가 제 역할을 못했다고 비판한 이유 중 하나로 정상가족주의로의 편협한 접근을 들었다. 그런데 더 노골적으로 여성을 출산하는 몸, 가족을 돌보는 존재로만 보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동안에도 장애여성, 이주여성, 성소수자여성 등 여성을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 보지 않았다. 또한 결혼이 아닌 비혼을 선택한 여성의 삶은 생색내기식으로 청년여성의 이름으로 들어간 정도였다. 단지 예산과 권한이 낮은 문제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명칭까지도 이렇게 하겠다니! 그야말로 심각한 퇴행이다. 


세계경제포럼이 2021년 발표한 성격차지수(Global Gender Gap Index·GGI)에서 한국은 153개국 중 102위다. 올해 세계 146개국 중에서는 하위권인 99위다. 지난해에 비해 순위가 약간 올랐으나 한국은 여전히 구조적 성차별이 매우 심한 나라다. 


성격차지수는 남성과 여성의 격차를 비교한 지수다. 예를 들어, 과거에 비해 여성들이 대학에 많이 진학하더라도 여전히 여성보다 남성을 대학에 더 많이 보낸다면 성격차지수는 변화가 적다. 올해 한국의 성격차지수 중 남녀의 임금평등 지수는 0.603으로 세계 98위였다. 연소득 격차도 컸다. 남성과 여성의 연소득 격차 순위는 세계 120위로 거의 꼴찌다(남성 5만6710달러, 여성 2만7930달러). 여성의 정치적 사회적 대표성도 낮다. 국회의원과 고위직·관리직 여성의 비율은 16.27%로 세계 125위다. 여성의 고등교육기관(대학, 대학원) 진학률은 남성보다 19.71%포인트 낮다(113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성별 격차가 크다. 


이러한 성별 격차는 자연발생적이지 않다. 은행권 성차별 비리에서 드러났듯이, 기업에서 남성에게 채용 시 더 많은 점수를 주거나 남성 TO를 더 많이 잡고, 기업 임원이나 국회의원에도 주로 남성을 후보로 선발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국가가 차별적인 관행과 제도를 시행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앞서 사무실로 전화한 여성이 말했듯이 일터는 성차별로 가득하다. 일터만이 아니다. 정치, 교육, 거리, 집안 어디서든 차별을 겪는 것이 여성의 일상이다. 이러한 구조적 성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 정책이 시급한데, 대통령이나 여가부 장관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하니 평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지지율 얻으려는 꼼수는 악수가 될 것


이러한 비판을 윤 정부가 모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해외에 가서는 한국에 성차별이 없어서 여가부를 폐지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부는 여가부 폐지를 내걸었다. 이번에도 미국 방문 중 비속어 사용으로 인해 대통령 자질 논란이 일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윤석열 정부는 국면을 전환하고자 여가부 폐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현재 민주당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의결되기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이를 발표한 것은 여론의 시선을 대통령으로부터 돌리기 위한 것이다. 거기에 곁가지로 일부 여성혐오 세력의 지지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꼼수까지 있다. 평등이 아니라 혐오를 조장해 지지율을 얻으려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다.


그러나 정부의 뜻대로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발생한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해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국가의 무책임에 대한 여론의 비판은 거세다. 여가부의 기능이 강화되어야 하는 현실에서 정부가 거꾸로 가는 정책을 내걸자 시민들이 들고 일어서고 있다. 이란 히잡 의문사 시위에서 드러났듯이 성평등 운동에는 남성들도 함께 하고 있다. 여성의 인권 보장, 성평등의 보장은 특정성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평등은 모두의 인권을 증진시키는 단초이다. 전 세계가 성평등을 위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이때, 거꾸로 가는 정부의 지지율이 오르기 어렵다.


현 정부를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해 시민들이 10월 15일 서울 종로에서 모이기로 했다. 정치적 위기 때마다 여성인권을 볼모로 삼는 정부에 큰소리를 외치기 위해서다. 그러니 성별에 관계없이 성평등을 원하는 모든 이들이 모이면 좋겠다. 여가부 폐지라는 꼼수가 윤 정부의 발등을 찍는 일임을 깨닫게 해주자. 그리고 우리를 두렵게 하자. 더 이상 여성을 2등 시민 취급하는 정부에 성평등의 글자를 각인시켜주자!